등록 : 2012.04.16 19:10
수정 : 2012.04.16 19:10
‘지방행정개편위’ 광역시 의회 폐지 등 법안추진
여수-순천-광양 등 7곳 여론조사 없이 통폐합도
지자체 등 “일방적 추진…지방자치 역행” 반발
대통령 산하 위원회가 ‘서울·부산 등 일부 자치구의 통합안’을 의결정족수도 못 채운 가운데 의결하는 등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위원이 이에 항의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여러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등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위원장 강현욱)는 16일, 서울의 중구와 종로구, 부산의 중구와 동구 등 인구와 면적이 해당 지역 평균에 미달하는 자치구 10곳을 인접 구끼리 묶어 5곳으로 통합하는 안건 등을 지난 13일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안에는 위원 27명 가운데 22명이 참석하고 8명만이 찬성해, ‘재적위원 과반 참석에 참석자 과반 찬성’이라는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강 위원장이 직권으로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경북 안동과 예천, 전남 여수·순천·광양, 충남 홍성·예산 등 7곳을 통폐합해 3개 자치단체로 묶는 방안을 주민 여론조사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도 통과시켰다.
이와 함께 서울과 광역시 6곳의 구의회·군의회 74곳(전국 기초의회의 32%)을 폐지하고, 광역시의 구청장은 선거로 뽑지 않고 광역단체장이 임명하는 안건도 의결했다. 이들 두 가지 안에 찬성한 위원도 각각 13명, 11명으로 참석자 과반을 겨우 넘겨 내부 반발까지 불거졌다. 정부는 오는 6월 말 대통령 보고를 거쳐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해, 오는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위원인 안성호 대전대 교수는 이날 “이번 개편안 확정은 지방자치 시계를 역행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전체 위원 27명 가운데 지방자치에 대한 전문성과 깊은 이해를 가진 위원은 4~6명 불과하다”고 성토했다. 그는 “다음주 위원직에서 사퇴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이날 간부회의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아무런 협의도 없이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통합 대상으로 꼽힌 자치단체들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충분한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반발했다. 이성웅 전남 광양시장은 “과거 정부 주도의 일방적 통합 추진으로 갈등이 증폭돼 지역주민들의 반목과 갈등이 심화됐다”며 “도시통합 논의는 정부가 아닌 민간 협의기구 차원에서 우선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양시의회는 지난달 결의문을 내어 “여수·순천·광양 3개 도시를 인위적으로 통합한다면 강력히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충남 홍성군과 통합할 대상으로 지목된 예산군은 바로 반발했다. 최승우 예산군수는 “몇백년의 정체성을 가진 자치단체를 함부로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남 순천 동부지역사회연구소 장채열 소장은 “정권 말기에 오기 부리듯 시·군 통합을 추진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도시 사이에 협력적 과제를 수행하다보면 자연스레 통합의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기용 기자, 광주·대전/정대하 전진식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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