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1.07 18:23 수정 : 2019.11.08 02:07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그의 대표 공약은 5천만달러(약 578억원) 이상 자산 가구에 연 2%, 10억달러(약 1조1570억원) 이상에 3%의 초강력 부유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그의 대표 공약은 5천만달러(약 578억원) 이상 자산 가구에 연 2%, 10억달러(약 1조1570억원) 이상에 3%의 초강력 부유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2년 미국 대선에서 내건 구호는 ‘잊힌 사람들을 위한 뉴딜(신정책)’이었다. 말 그대로 ‘뉴딜’은 토목공사 정도가 아니라 국가 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했다. 대공황 재발을 막기 위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한 글래스-스티걸법, 노동조합을 보장한 와그너법, 연금과 실업보험을 도입한 사회보장법 등이 대표적이다.

뉴딜은 1932년, 1936년 선거에서 미국 정치를 크게 바꿔놓았다. 공화당에 등 돌린 이들, 투표에 관심 없던 남부 흑인들, 새 이민자들까지 기존 정치의 ‘국외자’들이 투표장에 나왔다. 진보적 정책을 통해 남부-노동자-선진 자본 분파의 ‘뉴딜 다수파 연합’이 구축된 것이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번역한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크리스티 앤더슨 지음)에는 그 과정이 잘 분석돼 있다. 이 의원은 책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세력이라면 차별성 있는 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지지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다수파 연합을 형성해야 한다”고 적었다.

사회경제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검찰개혁 구호는 제한적이다. 청년과 사회적 약자, 정치 무관심층 등 이른바 ‘잊힌 유권자’들을 위한 확장적 이슈가 필요하다. 정권교체를 두 번이나 한 나라에서 아직 검찰이 문제되는 건 그만큼 검찰개혁의 절박성을 말해준다. 하지만 공정과 정의의 문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통틀어 ‘뉴뉴딜’ 정도로 명명할 만한 정책 전환은 이미 국내외적으로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 흐름의 핵심은 세금을 더 매기든 소득을 보전하든 허물어져 가는 중산층을 일으켜 세우자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이 대표적이다. 그가 올해 초 5천만달러(약 578억원) 이상 자산 가구에 연 2%, 10억달러(약 1조1570억원) 이상에 3% 부유세를 공약할 때만 해도 ‘찻잔 속 태풍’이지 싶었다. 하지만 최근 워런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선두 경쟁을 벌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앤드루 양은 매달 1000달러(약 115만7천원)의 기본소득을 공약해 주목받고 있다.

젊은 정치인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올해 초 법안 형태로 제기한 ‘그린 뉴딜’ 역시 미국 대선의 화두다. 그린 뉴딜은 친환경 산업을 중심으로 고용구조까지 재편하는 대규모 산업전환 프로젝트다. 2008년 영국에서 새 성장동력으로 제시됐고 오바마도 공약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번에 심화된 형태로 나왔다.

국내에서도 그린 뉴딜, 청년수당, 기본소득 등 전환적 정책들이 잇따르고 있다. 정의당은 9월 그린뉴딜경제위를 만들고 탄소기반 경제의 인프라와 산업을 생태친화적으로 바꾸는 전략을 제시하기로 했다. 심상정 대표는 이를 “진보의 성장전략”이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 10만명에게 매달 50만원씩 청년수당 지급 계획을 밝히면서 “기본소득으로 가는 마중물”이라고 한 건 의미심장하다. 민간연구소인 ‘랩2050’은 30만~65만원씩 지급하는 6가지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했다. 유종일 교수는 매년 50조원씩 정부 지출을 늘려 교육과 복지, 기후변화에 투자하는 ‘전환적 뉴딜’을 제안했다.

나라 안팎의 ‘뉴뉴딜’ 정책들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세를 얻을지는 알 수 없다. 수많은 논의와 시행착오가 이어질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 현실에선 ‘한가한 백일몽’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척박한 현실일수록 담대하고 전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10여년 전만 해도 무상급식, 경제민주화 등은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라는 시각이 많았지만 어느덧 대세가 됐다. 뉴뉴딜 역시 언젠가 시대정신으로 우뚝 설 수 있다.

검찰개혁이 구체제 혁파의 문제라면 뉴뉴딜은 미래를 열어가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반이 지난 지금 적폐청산, 최저임금 등으로 대별되는 기존 프레임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 대선 시기에 포괄적 사회개혁, 프레임 전환을 통한 진보의 다수파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적 진보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과 디테일의 문제다. 고착화된 흑백 프레임이 아닌 독창적이고 담대한, 형형색색의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백기철ㅣ논설위원

kcbae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