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10 18:08
수정 : 2019.09.1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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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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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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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선로 주변 작업자에게 열차 접근 정보를 알려주는 휴대용 경보기를 정규직에게만 지급하고 외주업체 작업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선로 작업 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는 고용 형태에 따라 인명에도 등급을 매긴 ‘안전 차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감사원이 10일 발표한 ‘철도 안전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최고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열차(KTX)가 철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깜깜이 주행’을 하고 있는 실태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가운데서도 핵심이 안전 차별이다. 철도공사는 기관사와 선로 작업자 사이에 열차 운행과 작업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경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지난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작업을 도맡다시피 하는 외주업체 작업자들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빈발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시스템을 개발했다는데, 외주업체 노동자들은 사고를 당해도 아무 상관 없다고 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지급 사유가 외주업체와 맺은 계약에 통신비 부담 조건이 들어 있지 않아서라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힌다. 기껏 마련한 대책을 차별적으로 적용하고서 무슨 수로 사고를 막는다는 말인가.
감사원은 선로 작업자가 승인된 작업시간이 아닌데도 선로에 출입하는 경우가 66%에 이르고, 승인된 시간을 초과해 작업하는 경우도 22%에 이르지만 철도공사 관제센터가 이를 통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책임을 현장의 외주업체 작업자에게 묻는 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안전 규정을 ‘왜 지키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왜 지킬 수 없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휴대용 경보기조차 지급하지 않는데, 안전 규정이 현실성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얼마 전 서울 금천구청역 근처 선로에서 일어난 사망사고도 휴대용 경보기가 지급되고 승인 내용대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조건이 제공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위험의 외주화’는 안전 차별로 이어지고, 안전 차별은 인명보다 비용 절감을 앞세운 데서 비롯된다. 그 결과가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선로작업 사망자 수다. 우리나라는 선로 1억㎞당 3.6명(2015년)인 데 비해, 영국·이탈리아는 0명, 프랑스는 0.4명이라고 한다. 이 격차를 해소할 의지가 없다면 철도공사는 더는 공기업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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