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2 18:29
수정 : 2019.07.02 19:26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일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자유무역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그는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국가와 국가의 신뢰 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말한 뒤 “세계무역기구의 규칙에 정합적이다. 자유무역과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는 뜻을 드러내면서도 한국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의식해 보복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얕은수가 아닐 수 없다.
경제와 무관한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수출 규제를 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들도 비판을 하겠는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징용공을 둘러싼 대항 조치의 응수를 자제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조치는 국제정치의 도구로서 통상정책을 이용하려는 발상이라는 의심이 짙다”며 “트럼프 정권과 중국이 사용하는 수법으로, 일본은 이런 수법에 대해 선을 그어왔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일본이 그동안 주창해온 자유무역주의에 역행한다”며 “국제사회에서 일본에 대해 불신감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일본은 지난달 29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동성명 채택을 주도했다. 정상들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과 투자 환경을 구축하고 시장 개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아베 정부가 4일부터 수출허가 심사를 받도록 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에칭가스 3개 품목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서 꼭 필요한 화학 소재다. 전체 수입품 중 일본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40~90%에 이를 정도로 일본 의존도가 높다. 이들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는 우리의 약한 고리를 건드려 압박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수출 규제로 일본 기업들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의 최대 수요처다. 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일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타격을 받게 된다. 일본 기업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다. 아베 정부가 한국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자해극’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당장은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협조하면서 총력 대응해야 하지만, 이참에 근본적인 대책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소재의 수입처를 미국·중국 등으로 다변화해 일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또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 기업들의 기술 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을 통해 국산화 비율을 높여야 한다. 그게 아베 정부의 치졸한 보복에 대한 대응을 넘어 우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길이다. 물론 단기간에 가능한 일은 아니며 꾸준히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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