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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1 18:36 수정 : 2019.04.11 19:21

낙태죄 66년 만에 ‘헌법 불합치’ 결정
‘임신 22주’까지 낙태허용 기준 예시
내년까지 법 개정할 국회 책임 크다

낙태죄폐지를 주장해온 시민단체 인사들이 11일 헌법불합치 결정 뒤 헌법재판소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헌법재판소가 11일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그 이후엔 효력이 자동 정지된다. 1953년 낙태죄가 형법에 포함된 지 66년 만에 손을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낙태죄가 법의 사각지대를 조장해 오히려 여성들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자기결정권을 제약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의미가 크다. 다만 외국에서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임신 초기의 낙태 허용 등에 대해서까지 분명하게 위헌을 선언하는 대신 국회의 입법으로 미룬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앞으로 갈등을 수렴하고 생산적 논의를 통해 헌재 결정 취지대로 법을 개정해야 하는 과제를 넘겨받은 국회의 책임이 크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임신 여성이 겪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갈등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낙태를 예외 없이 형사처벌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란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여성을 보호할 때 태아의 생명도 보호된다는 전제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임신 22주’를 사실상의 낙태허용 기준 시한으로 제시했다. 태아가 임신 22주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므로 그 이전에는 ‘국가가 태아의 생명보호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며 일정 조건 아래 법으로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임신 경험 있는 만 16~44살 이하 여성 1054명 가운데 41.9%가 낙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해 낙태 건수 통계는 17만건(2010년)에서 5만여건(2017년) 수준이다. 이에 비해 최근 5년 낙태죄로 기소된 경우는 매년 12~13명, 이 중 실형은 4~5명에 불과하니 사실 사문화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처벌 조항으로 임신중절 여성들의 건강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불러왔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약물이 유통되는가 하면 수술 과정에서 의료사고나 후유증이 발생해도 구제받기가 어려웠다. 의대에서 아예 임신중절수술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니, 우려할 만하다.

헌재가 ‘임신 22주’를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그 안에는 일정 조건 아래 낙태를 허용하는 일본 사례를 참고한 듯하다. 12주 이내의 낙태는 산모 판단에 맡기는 미국과 독일·프랑스 등을 비롯해 영국(24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80%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제 국회의 입법이 중요하다. 입법 과정에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란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바란다. 특히 태아의 생명권이란 아이가 제대로 태어나 자랄 수 있는 기반을 국가와 사회가 함께 만들어줄 때 완성된다. 낙태를 허용한 나라들의 중절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건,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사회적 기반과 태도가 갖춰졌기 때문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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