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2 18:39
수정 : 2019.03.2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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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14일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 청사 앞에서 열린 개소식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등이 제막을 하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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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2일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북쪽 인력 15명은 이날 오전 간단한 서류만 챙긴 뒤 장비를 남겨둔 채 사무소를 떠났다고 한다. 북한이 남북협력의 요람인 연락사무소에서 이런 식으로 갑자기 철수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상황을 신속히 파악해 연락사무소가 가능한 한 빨리 원상회복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사태가 장기화해 남북관계에 큰 파장이 일까 걱정된다.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계속돼온 북-미 대치의 불똥이 남북관계에까지 옮겨붙은 결과로 보인다. 북-미는 하노이 결렬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압박과 비판의 강도를 높여왔다. 급기야 지난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협상 중단을 고려한다’는 강경한 발언을 내놓기까지 했다. 이런 대치 와중에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왔다는 혐의를 받는 중국 해운사 두 곳을 독자 제재 명단에 올렸다. 볼턴 보좌관은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 해상 운송을 중단하기 위해 더 행동해야 한다”고 압박 강도를 높였다. 미국이 하노이 결렬 이후 3주 만에 독자 제재에 나선 것이 북한에는 전방위적 압박 신호로 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연락사무소 철수는 마땅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런 압박 상황에서 일단 판을 흔들고 보자는 차원의 행동으로 보인다. 남쪽 정부가 북-미 사이를 중재하기보다는 미국과 함께 제재 압박에 동참하고 있다는 판단도 이번 철수의 배경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최 부상이 지난주 외신 회견에서 한국 정부를 ‘미국 쪽에 선 플레이어’라고 지적한 데서 북한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남북협력으로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도 어렵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약하기도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연락사무소 철수라는 강경 조처를 단행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일방적 철수는 남북관계를 위기에 빠뜨리는 악수일 뿐이다. 북-미 협상 교착 문제는 그것대로 풀어야지, 남북협력의 교두보를 흔드는 방식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 협상 진전을 위해 노력해온 남쪽 정부의 처지를 어렵게 만들 뿐이다. 남북연락사무소는 남북협력의 공동 토대다. 연락사무소 철수는 남북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일종의 자해행위다. 북한은 철수 결정을 즉각 재고해 사태를 원상으로 돌려야 한다. 연락사무소 철수가 길어질 경우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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