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2 18:27
수정 : 2019.03.22 19:08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군경에 불법체포돼 총살당한 장아무개(당시 28살)씨 등 3명의 유족들이 낸 재심 청구를 21일 받아들였다. 사건 발생 71년 만이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이들의 희생을 확인한 지 10년 만이다. 이제라도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무척 다행스럽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 2천여명이 제주 4·3을 진압하라는 출동명령을 거부하며 시작됐다. 반군과 진압군이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보복과 재보복이 이어졌다. 군경은 반란군에 협조했다고 지목된 사람들을 무차별 연행해 일부는 재판도 없이 총살했다. 2009년 1월 진실화해위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여순사건의 직간접 영향으로 전남 1340명, 경남·경북 683명 등 2046명이 희생됐고 순천 일대에서만 민간인 430여명이 집단 사살됐다고 한다.
이 사건 당사자로 1948년 10월 당시 기관사로 근무하던 장씨는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출근했다가 순천역 광장에서 동료 직원들과 함께 연행된 뒤 희생을 당했다. 신아무개(당시 31살), 이아무개(당시 21살)씨 역시 마을에서 경찰에 체포·연행된 뒤 총살당했다. 모두 구속영장 등 정당한 절차 없이 이뤄졌고 장씨는 온갖 고문을 당했다는 목격자 진술까지 있었다. 대법원이 불법적인 체포·감금 사실을 인정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으니 향후 사법부가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아야 하겠으나 이와 별개로 국회도 계류 중인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김재형·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스러져간 영혼은 그 누가 달랠 수 있겠는가. … 그래도 법에 호소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법률에 충실한 판단을 하는 것이 사법부가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했다. 우리 사회 일각엔 과거사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냉전논리에 사로잡혀 색깔론을 부추기는 이들이 적잖다. 그러나 이념대결의 한복판에서 희생된 이들의 억울함을 바로잡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사법부만의 몫이 아님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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