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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4 21:11 수정 : 2005.01.04 21:11

오래 전에 나온 <혹성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미래에 인류와 유인원의 처지가 뒤바뀌어 원숭이들이 인간을 노예로 삼아 부린다는 설정에 근거한 영화였다. 중학생 땐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 무척이나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부터 나에게 항상 그 영화 제목을 기억나게 하는 곳이 생겼다. 다름 아닌 철창 속에 갇힌 동물원의 원숭이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원숭이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다시 한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철창 안과 바깥세상의 차이는 참으로 엄청나지 않은가. 아무도 철창 안 구경거리 원숭이의 신세가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원숭이 우리 앞에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무도 철창 안 구경거리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동물들을 가두어 놓고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입장을 바꾸어 원숭이가 만일 생각할 수 있다면 그들도 그 안의 구경거리 신세를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시키는 것을 폭력이라 한다. 우리는 동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동물원의 동물들은 자신이 갇혀서 구경거리가 되어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동물원 동물들은 행동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똑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계속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정형행동은 사람도 정신이상 상태에서 보이는 이상행동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들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강제로 철창 안에 가두어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폭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동물들이 오로지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한 흥밋거리로서만 취급받는 동물원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많은 국제 수준의 동물원들이 이러한 인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동물원들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동물들을 멸종이라는 위협으로부터 보전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이들을 일시적으로 동물원에서 보호하며 번식을 시키자는 것이다. 이 지구에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수많은 동물 종들이 이미 멸종되었고 또 멸종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불상이나 몽골야생말 같은 동물들은 이미 야생에서는 멸종하였으나 동물원에서 보호, 번식시켰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이제 동물원에서 번식된 개체들을 그들이 본래 살았던 야생으로 복귀시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는 동물원의 유일한 존재이유가 바로 동물들의 보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1993년 세계의 동물원들이 따라야 할 보전활동의 지침인 세계동물원보전전략(World Zoo Conservation Strategy)을 작성,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동물원인 서울대공원도 이 협회에 가입하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공원이 이 지침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최근 서울대공원은 에버랜드 식의 상업성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다.

이제 서울대공원 자리에 세계적 명성을 가진 위락공원 디즈니랜드가 들어선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서울시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옮기든 그 자리에 계속 있든, 과천에 자리 잡은 지 이제 20년이 되는 서울대공원은 한국사회에서 그 존재가치를 심각하게 다시 검토할 때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단순히 즐거움을 주기 위한 동물원으로 계속 남을 것인가, 아니면 세계적 조류에 동참하여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위한 보전센터로서 거듭날 것인가. 서울대공원의 운영자인 서울시가 예산 상의 이유로 서울대공원을 보전기관으로 변신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서울시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운영을 국립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동물을 사람의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대접하는 동물원은 21세기에는 그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 세계적 조류이다.


이 항/서울대 수의대 교수,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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