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13 18:32 수정 : 2005.01.13 18:32

며칠 전 신문에서 미국의 박사학위 취득자 가운데 미국 대학을 뺀 외국 대학 출신자 가운데 서울대가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 대학을 포함해도 버클리대학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보면, 서울대에 더해 연세대와 고려대도 10위권에 들었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은 날이 내가 재직하는 대학의 입학 면접날이라 입시생들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교수의 질문 의도를 잘 짐작 못해서 머뭇거리긴 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현상이며 굉장한 성취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답했다. 그들에게는 서울대 출신들이 미국에 가서 그렇게 많이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사실이 올림픽 경기에 나가서 메달을 많이 따온 것이나 진배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런 식의 생각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는 학생에게 한정될 것 같지는 않은데, 만일 그렇게 사태를 본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 된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지적 담론과 사유의 흐름을 규정하는 지식인이 되고, 정책을 생산하고 집행하는 관료가 되며, 사회적 생산력을 담지한 기업의 경영진으로 편입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명문대학 출신들이 미국에서 그렇게 많이 박사를 받는다는 것은 엘리트 집단의 충원이 미국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며, 그런 만큼 미국 사회가 생산한 지적 패러다임과 시스템을 우리 사회의 표준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커짐을 뜻한다.


그저 미국 대학에서 공부한 것뿐이고 학문이란 보편적인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문의 보편성이란 국민적 특수성을 아우름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특수성을 산입하지 않고는 구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편성의 소재지는 미국 대학과 우리 대학 간의 대화와 토론에서, 그리고 예컨대 인도의 대학과 우리 대학 사이의 교류와 논쟁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미국 대학에 있지 않다. 미국 대학은 불가피하게 미국적이다. 그러니 엘리트 재생산이 미국 대학을 매개로 해서 이뤄지는 것은 우리와 실정이 달라도 한참 다른 사회가 우리의 준거점이 되는 지적 편식을 거듭하는 일이 된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큰 사회적 파급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꽤 치명적인 사태를 낳을 수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신장섭과 장하준의 책,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은 그런 사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외환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80년대 말, 90년대 초를 통해서 우리나라 경제 엘리트 집단이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수용했고, 그 결과 90년대 초부터 97년까지 적극적으로 국가의 산업정책 기능을 축소해 나간 데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국의 경제 엘리트가 이렇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자발적으로 복속해간 원인의 하나를 경제학 문화의 미국화에서 찾는다. 그들은 87년 말부터 95년 사이에 미국 경제학 박사 가운데 한국인이 차지한 비율이 약 10%였다고 집계했다. “한국 인구가 세계 인구의 약 0.75%를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놀라운 일이다. “이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한국에 귀국했고, 따라서 대학의 경제학 교육을 점차로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움직여나갔다. 추가로 처음에 한국 대학에서 점차로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따라 교육받게 된 많은 엘리트 관료들은 2년 동안의 고급과정 학습을 위해 미국에 보내졌다.

그들 중 얼마는 심지어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더 오래 미국에 머물렀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결국 한국 정부에서 맡고 있던 이전의 직무로 복귀했다.”

이런 지적은 지식·정책·엘리트 충원 간의 관계에 대한 더 체계적인 연구에 의해 보완되어야겠지만, 고등교육과 그것을 매개로 한 엘리트 충원방식이 한 사회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임은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엘리트와 사유체계의 미국화를 암시하는 통계를 더 깊이 곱씹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