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바보상자’ 키우기 말이 되는가 |
문화관광부 장관의 ‘상식에 어긋나는 발언’이 말썽을 빚고 있다. 정동채 장관은 한 모임에서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에 ‘광고 총량제’와 ‘중간 광고제’를 도입할 뜻을 내비쳤다. 이는 제도가 가져올 ‘파괴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짧은 생각’의 결과로 이해한다.
제도의 파괴적 영향은 프로그램의 질적 내용을 크게 해치는 쪽으로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 무분별한 시청률 경쟁이 한결 치열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광고 물량은 궁극적으로 시청률이 지배하는 터다. 시청률은 프로그램의 품격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선정적이고 엽기적이며 말초적인 요소가 시청률은 높이는 데 유용하다. 프로그램의 품격을 고려하지 않는 시청률 경쟁은 텔레비전이 지닌 부정적 속성을 부추기는 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곧 ‘바보상자’의 성격이 한층 강화될 위험성이 큰 것이다. 방송이 광고에 종속되는 불행한 파급효과도 걱정된다. 이는 지상파 방송이 지닌 공익적 성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언론매체의 다양성 원칙에도 어긋난다. 최근 신문법의 정신을 곱씹어 볼 일이다. 지배적인 매체의 일방적 독주를 막자는 게 신문법 얼개의 중추적 요소 아닌가. 다양성의 원칙은 서로 다른 매체 갈래 사이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언론매체의 다양성은 여론의 건강한 유통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방송 광고의 총량제나 중간 광고제는 광고의 방송 집중 현상을 빚어낼 것이다. 경영환경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방송업계에 ‘특혜적 정책’을 펴는 것은 결코 옳은 방향이 아니다.
시민단체와 학자들의 견해를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두 제도에는 시청자 주권을 침해하고 상업성을 부추길 독소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2000년 박지원 전 장관이 이 제도 도입을 검토하다가 백지화한 사실을 떠올릴 일이다. 상황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다. 광고 총량제나 중간 광고제를 도입하기엔 시기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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