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0 17:23
수정 : 2005.02.10 17:23
2005년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조약이 있은 지 100년,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은 지 60년, 그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이러한 숫자들에 굳이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한-일 간의 과거사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의 한가운데에 사할린 한인 문제가 있다.
사할린 한인은 일제 식민지배 시기에 모집, 알선, 징용 등으로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본국으로 도망간 일본이 버려둔 우리의 동포들과 그 자손들이다. 이들의 귀환을 위해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일본국을 피고로 1975년 ‘사할린 잔류자 귀환청구 소송’과 1990년 ‘일본국의 귀환의무 불이행에 기한 위자료 청구소송’이 제기됐지만, 다른 각종 대일청구 소송에서도 드러난 일본 사법부의 정치적 태도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은 1980년대 말부터 실현됐다. 한-일 양국의 합의로 몇 차례의 영주귀국 사업을 통해 현재 1598명이 한국에 돌아왔고, 그 중 1163명이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사할린에서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한인 1세(1945년 8월15일 이전 출생자)는 3000명이 넘는다.
사할린 한인의 귀환사업을 위해 일본은 해마다 일정액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지만 문제는 이 자금의 성격이다. 법적 책임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인 ‘손해’에 대한 ‘배상’과 적법행위로 인한 피해인 ‘손실’에 대한 ‘보상’이 그것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한 것이나 사할린으로 한인을 강제연행한 것이 불법인지 적법인지, 또 2차대전 종전시 일본이 사할린에 있던 일본인은 본국으로 귀환시키고 한인은 내버려둔 것이 불법인지 적법인지에 따라 배상이냐 보상이냐가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65년의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며, 다만 정치적·역사적·도덕적 책임을 느껴 ‘인도적’ ‘지원’의 차원에서 이 자금을 대는 것이라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게 법적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일본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할린 한인 문제는 귀환문제뿐만 아니라 강제 저축금, 일본 국채, 미지급 임금 등의 상환 문제와 이중징용자의 배상(보상) 문제도 포함한다. 또 아직 손도 대보지 못한 사할린 한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조사연구와 그 처우 문제도 있다.
사할린 한인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한국 귀환과 각종 배상(보상)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외국민의 피해에 대한 외교적 보호는 국적국의 권리이지만 한국은 사할린 한인의 한국 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적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사할린 한인 문제를 한-일 간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다루는 것은 가능하다. 이는 법적·정치적·외교적 방식이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일본에게 법적 책임을 추궁할 것인지, 법외적인 지원을 받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일 과거사 청산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즉 대한민국의 정신적 존재 근거를 확보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사할린 한인 문제를 대하는 정부와 국회의 태도를 보면서 그 담당자들이 그만한 일을 맡을 만한 국가의식과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인지를 가늠해보게 될 것이다.
물론 한-일 과거사 청산은 일본이라는 상대가 있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 내부적으로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사할린 한인들의 가장 근본적인, 그러나 더 늦출 수만은 없는 1세들의 귀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칭)사할린 한인 귀환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노영돈/ 인천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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