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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5 16:43 수정 : 2020.01.16 02:36

20년 끌어온 수사권 조정이 1년6개월 만에 성과를 본 건, 검찰이 보여준 무분별한 ‘조국 수사’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찰이 잘해서가 아니라 검찰이 너무 못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검찰개혁’ 과제의 뒤로 미룬 ‘경찰개혁’ 논의를 본격화할 때가 됐다.

지난해 10월21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27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민갑룡 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연말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시작된 패스트트랙 정국은 13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담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선거법 개정은 여야의 정치적 이해가 걸린 탓에 격렬한 공방 속에 가까스로 이뤄졌다. 그 뒤 본회의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역시 검찰과 야당의 강한 반발로 진통을 거듭한 끝에 입법됐다. 그에 비하면 13일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비교적 손쉽게 입법이 이뤄진 셈이다.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없었고, 대치나 몸싸움도 벌어지지 않았다.

언론에선 이를 ‘검찰개혁 법안 입법 끝났다’ 또는 ‘검찰개혁 제도화 완성’이라고 표현했다. 사상 처음으로 경찰에 독자 수사권을 주는 법안임에도, ‘경찰’은 신문·방송의 헤드라인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줄곧 검찰 지휘를 받던 경찰이 66년 만에 수사권을 갖는 건, 공수처 설치만큼이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경찰’이 세간의 주목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검찰개혁’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오른 탓이 크다. 이로 인해 경찰의 독자 수사권에 관한 논의는 건너뛴 채 검찰의 힘을 빼는 차원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진행됐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두고 “결국 도착하는 곳은 중국 공안이자 경찰공화국일 것”이라는 어느 검사의 비난은 물론 타당하지 않다. 그런 식의 비유라면 수사권, 기소권, 영장 청구권에 압수물 처리와 변사체 검시까지 경찰을 지휘·감독하는 검찰은 ‘절대권력’ 그 자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러니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무소불위 검찰을 통제해야 한다는 명제와 별개로, 경찰이 법 개정에 걸맞은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비로소 경찰은 ‘개혁과 신뢰’라는 국민 심판대 위에 선 셈이다.

지난해 경찰청은 전국의 모든 정보경찰에게 휴대용 ‘정보경찰 활동규칙 가이드북’을 지급했다. 정보 활동의 범위·절차·한계를 명확히 규정해, 사찰과 불법 개입 논란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였다. 많은 항목에서 과거보다 진일보한 내용이 포함됐다. 민간단체의 상시 출입을 금지했고, 상부의 부당한 정보수집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했다. 그러나 노동쟁의 현장에서 경찰 정보관이 이해당사자들 동의를 얻어 ‘자율 해결’을 유도하는 행위를 여전히 할 수가 있다. 노조와 ‘블라인드 교섭’을 하며 회사를 도와주고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어느 정보경찰의 사례가 되풀이되지 말란 법은 없다.

2014년 만든 경찰의 ‘수사사건 공보규칙’은 “사건관계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사건 내용을 공표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개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규칙이 거의 지켜지지 않는 건, 2010년 이른바 논두렁 시계 사건 이후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제정했던 검찰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검찰은 지난해 조국 사태 와중에 ‘일방적인 정보를 흘려 여론을 호도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고, 법무부는 훨씬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새로 내놓았다. 검찰은 이렇게라도 대응을 했지만, 앞으로 훨씬 많은 사건을 수사할 경찰은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경찰이 검찰만큼 ‘정치적’이진 않더라도, 개인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노출할 위험은 검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고 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건 ‘수사의 신뢰’를 높이는 일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4~16년 3년간 경찰의 불기소 의견이 검찰에서 기소 의견으로 바뀐 사례가 연평균 4132건, 반대의 사례가 평균 9649건이었다. 이 수치는 전체 경찰 송치 사건의 0.2%에 불과하고, 이것만으로 ‘잘못된 경찰 수사를 검찰이 바로잡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이 아닌 일반 민생 사건에선 경찰이 검찰보다 공정할 것이란 믿음을 국민에게 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2018년 6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서명했을 때, 경찰청 고위 간부들의 솔직한 반응은 “기대하지만 입법까지 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였다. 20년 끌어온 수사권 조정이 1년6개월 만에 성과를 본 건, 검찰의 무분별한 ‘조국 수사’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찰이 잘해서가 아니라 검찰이 너무 못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검찰개혁’이란 과제의 뒤로 미룬 ‘경찰개혁’ 논의를 본격화할 때가 됐다.

박찬수 ㅣ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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