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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4 18:01 수정 : 2019.12.25 12:51

안관옥 ㅣ 전국1팀 기자

‘솔로몬 테마파크’를 만드는 이들이 현명하지는 않았다. 민감지역인 만큼 뒤엉킨 주검을 발견했을 때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현장을 보존하고 전문가를 불렀어야 맞다. 보고를 했는데도 개장은 그대로 진행됐다. 영상도 없이 주검들을 수습했다. 이후 현장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88-1 옛 광주교도소 북쪽 발굴터에 가봤다. 찾기 쉽지 않았다. 경사로에서 담을 넘었다. 배추밭을 건너 철조망을 지났다. 이윽고 테니스장 한 면만한 묘지 터가 나타났다. 네모난 시멘트 관도, 흩어진 유골들도 모두 옮겨버린 뒤라서 붉은 흙이 더 처연해 보였다.

‘접근금지’라는 문자 앞에서 몸을 돌렸다. 100여m 떨어진 교도소 담장 위로 높다란 감시탑이 보였다. 카메라와 조명등이 여전했다. 담장 외곽 이중 철조망에는 ‘통제구역’이라는 표지를 붙이고, 빈 깡통을 여럿 매달아 놓았다. 민가도 기척도 없어 공연히 주눅이 들었다. 도로 건너 흩어진 묘지 20여기는 이곳이 후미진 공동묘지였음을 실감하게 했다.

이곳에서 지난 19일 주검 40여구가 쏟아져 나오자 세상이 깜짝 놀랐다. 무덤은 죽은 이의 신분과 권력을 보여준다. 이들은 피라미드나 지하궁전에 묻히지 못했다. 합장묘의 시멘트 관 위에 가까스로 걸쳐져 있었다. 가족한테 잊히고, 시멘트 관의 비좁은 공간마저 허락받지 못한 이들이었다.

이 주검들은 즉각 국민의 머릿속에서 5월의 기억을 불러냈다. 계엄군 3명이 암매장을 증언했고, 연행자 427명이 수감됐던 광주교도소라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80년 암매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잊어버린 세태에 경종을 울려댔고, 찾아내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되살렸다.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주검 수십구가 나와 관계자들이 20일 오후 출입통제선을 치고 있다. 이들 시신 중에는 무연고 사망자나 사형수 표지 없는 유골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5·18 행방불명자 관련성이 주목된다. 연합뉴스

행방불명자 수습은 발포명령자 색출과 함께 5·18의 양대 과제로 남아 있다. 1990~2015년 행방불명 신고자는 242명이고 이 가운데 84명이 인정을 받았다. 이후 무명열사 묘지에서 행방불명자 6명의 주검이 나왔다. 아직 주검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이는 78명에 이른다. 1997년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복권하면서 행방불명자 찾기가 시작됐다. 암매장 제보를 받은 무등산 자락, 광주교도소, 황룡강 둔치, 너릿재 고개 등을 파보고, 벽제 화장장 안, 청주 군부대 터 등을 수소문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가해자들은 “가매장은 있어도 암매장은 없었다”고 발뺌에 급급했다. 유가족들은 “뼈라도 찾아 양지쪽에 거두고 싶다”며 피울음을 토했다.

발굴된 80여명의 유골은 41상자 분량에 담겼다. 유전자 감식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졌다. 유류품이 없어 5·18 관련성을 따지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5·18 주검들은 대개 옷을 입거나 신을 신은 상태였다. 판별에 시비가 없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면 관련성이 없다. 이 운동화는 1982년부터 판매했다. 곁에서 나온 담배 한 개비, 성냥 한 개비도 일련번호로 제조 시기를 판단하는 데 쓰였다.

5월단체들과 합동감식반은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1971년 이후 시멘트 관 위에 집단매장한 이를 교도소 직원이나 외부의 검은손으로 나눠 추적한다고 한다. 교도소 쪽이 무심코 주검의 수와 출처를 잘못 처리했는지, 아니면 사체처리반이 은밀하게 개입했는지를 판명하기로 했다. 묘지관리 기록을 검증해 작업자를 특정하고, 신고자 242명 중 아직 정보가 없는 118명의 혈액을 확보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국제인권법에서는 집단학살을 다룰 때 3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총체적 진실 규명, 피해자 중심주의, 정부의 이중적 지위 등이다. 앞의 둘은 당연하다. 국가의 역할은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여태껏 가해자로서 은폐와 왜곡에 집착했던 국가가 정의의 실현자로 거듭나기를 고대한다.

성탄이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이들을 돌아보는 날이다. 죽어서도 낮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무덤이 떠오른다. 과연 누가 그들을 묻었을까?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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