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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9 09:25 수정 : 2019.12.19 09:39

김진철
산업팀장

오토바이 한 대가 아슬아슬, 눈앞을 스쳐 지났다. 거리를 종횡무진 누비는 오토바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왕복 8차로 네거리에서, 마주 오는 버스조차 피하지 않고 좌회전하는 그들을 흔히 목격한다. 목숨 따위 아랑곳 않는 듯한 모습에, 조마조마함은 가시질 않는다. 헬멧도 쓰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때로 가늠해보게 된다.

‘플랫폼’ 위에서 일하는 ‘긱(gig) 노동자’다. ‘긱’이란 1920년대 미국에서 하룻밤 고용되는 재즈 연주자에서 유래했다. 유연하게 공급되는 노동력, 독립형 계약 근로자 등으로 이들은 설명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고정적인 근무지가 없어도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또 스스로 일하는 시간·공간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전세계 프리랜서의 절반 이상이 34살 이하다. 나이대만 봐도 자발적이라기보다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특히 이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들은 쉽게 질주하는 만큼 쉽게 죽는다. 교통사고는 줄었으나 오토바이 사고는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발생한 오토바이 사고 사망자 3명 중 1명이 무언가를 배달하는 중이었다. 주말에 죽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내가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동안 누군가는 길에서 죽고 있었다. 20대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제대로 누리지 못한 젊음을 거리에서 잃고 있는 것이다.

하루살이처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보며, 씨제이(CJ)를 떠올렸다. 씨제이는 현재 권고사직을 포함한 인력 재배치를 진행 중이다. 여느 기업에 견줘 씨제이는 더욱 급한 모양이다. 직급과 상관없이, 즉 입사 연차를 가리지 않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입사 3~4년차가 일하던 업무부서가 더는 존속할 수 없으니 회사를 떠나야 한다면, 그들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대기업에 다녔던 ‘자산’이라도 있으니 ‘긱’ 신세는 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씨제이에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조차 없는 것은, 노조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 이병철의 무노조 경영은 씨제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씨제이의 실적 악화의 핵심 이유로 미국 슈완스가 꼽힌다. 이재현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공격적 경영’을 이어가던 씨제이가 지난해 말 이 냉동식품 전문업체를 사들이는 데 2조원을 들였다. 지난해 7조원대이던 씨제이제일제당의 순차입금은 올 3분기 9조4752억원으로 불어났다. 씨제이가 허리띠를 졸라맨 가장 핵심적인 사유다.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의 아들 이선호 전 씨제이제일제당 부장이 슈완스 인수 이후 절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씨제이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었다.

이선호 전 부장은 지난 9월 대마초를 몰래 들여오다 당국에 적발됐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등을 선고받았다. 이 전 부장이 대마 오일 카트리지와 캔디형, 젤리형 대마들을 가방에 담아 공항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상상 속에서도 조마조마하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뻔히 걸릴 만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재계에서는 여러 해설과 짐작이 난무했다. 씨제이는 그룹 차원의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뉘우치며” 스스로 택시를 타고 자수하러 간 그의 이야기만 강조됐다.

이선호 전 부장의 그룹 승계작업은 이미 개시됐다. 올 4월 씨제이올리브네트웍스의 인적 분할 및 지주사와의 합병 등의 과정을 거쳐 이 전 부장은 그룹 지주사인 씨제이㈜ 지분 2.8%를 오는 27일 확보하게 된다. 지난 9일에는 이재현 회장이 보유 중이던 씨제이㈜ 신형우선주 92만여주를 이 전 부장이 넘겨받았다. 이 주식이 의결권을 갖게 되는 2029년 이 전 부장의 씨제이㈜ 지분은 5.2%로 늘어나게 된다. 각종 신형증권과 금융기술 및 인수합병이 총동원되는 복잡한 구조이지만,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주려는 의도는 간명하다.

장차 대기업집단을 이끌 29살 이선호 전 부장과 거리 곳곳을 질주하며 음식을 배달하는 어린 얼굴들을 견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위태로운 오토바이와 마주쳐 가슴이 오그라들 때마다, 이 땅에 몇 안 되는 이선호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습벽은 좀처럼 고쳐지질 않는다.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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