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10 18:36 수정 : 2019.12.11 02:39

주진형 ㅣ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며칠 전 디엘에프(DLF·파생결합펀드) 사태와 관련해 은행에 불완전판매의 책임이 있다며 투자자 손실액의 최대 80%를 배상하라는 금융감독원의 조정 결정이 나왔다. 금감원은 나름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 한국에서 투자자와 금융사 사이에 투자상품을 갖고 분쟁이 벌어졌을 경우 판매사가 손실의 80%까지 분담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금융위기 때 우리은행이 판매한 파워인컴펀드에 투자한 뒤 원금 대부분을 잃은 투자자들에게도 50%만 배상하라고 했다.

현재 금감원장인 윤석헌씨는 학자 시절부터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해 오던 사람이다. 취임하자마자 다들 이미 지나간 것으로 치던 키코 사태를 금융위원회와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조사하도록 지시하여 은행들이 손실 분담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런 금감원장이기에 이번 분쟁조정의 결과를 놓고 금감원에선 현행법과 규제 절차 아래에서 최대한 판매사의 책임을 물었다고 자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일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전액 손실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부적절한 투자상품을 팔고 나서 나중에 사고가 났을 때 왜 우리는 전액 손실보상을 하는 경우가 없을까? 분명히 은행이 잘못했는데도 전액 손실보상이 아니라 최대 80%만 보상해주는 것이 정당한가? 금감원과 일반인들 사이에 이런 인식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금융소비자가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법제도를 바꾸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왜 한국에선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일까? 무엇을 바꾸어야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까?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을 제한된 지면에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글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직원과 업계로부터 이단아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노력했던 전직 금융산업 경영자가 오랜 연구와 현장 경험을 통해 느낀 소감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한국에서 분쟁조정에 따른 손실배상이 일반인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법제도가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원은 금융소비자 피해보상에 매우 인색하다. 무릇 모든 투자는 자기 책임하에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자기에게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해도 자기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분명히 문제가 있다. 정보와 지식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금융사업자와 투자자 사이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업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도 지고 있다. 정보에서 압도적 우위인 사업자를 상대로 계약을 맺은 소비자에게 자기 책임을 물으면 분쟁 발생 시 어정쩡한 중간 타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중간 타협은 늘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왜냐하면 분담해야 하는 손실이 은행의 경우 별로 크지 않은 것에 비해 개인의 경우엔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입한 티브이가 불량제품이었다고 해서 소비자가 입게 될 피해는 그리 크지 않지만 금융에선 자칫하면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서구 법제도는 소비자 보호의무와 자기책임 원칙이 충돌할 경우 이를 대등 관계에 의거한 쌍방과실로 보지 않고 소비자 보호의무를 우선시한다. 이를 위해 등장한 개념이 적합성(suitability) 원칙이다. 소비자의 이해에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팔거나 조언을 하면 금융업자가 소비자에게 장사할 때 내건 신뢰를 어긴 것이므로 일종의 사기로 간주하고 그 책임을 우선 금융업자에게 엄중히 부과한다. 예를 들어 은퇴한 사람에게 변동성이 큰 주식 투자를 권한 것만으로도 손실 발생 시 책임을 물린다.

한국에도 적합성 원칙이 들어와 있지 않은 건 아니다. 법원 판례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언급되기 시작하다가 2007년 통과된 자본시장법에서 처음으로 명문화됐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그 법엔 위반 때 벌칙 규정이 없었다. 그리고 이 사정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본시장을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욕이 너무 앞섰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갖고 관료가 아무리 일하는 시늉을 해도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빨리 달리는 차를 만들고 싶으면 엔진도 좋아야 하지만 브레이크도 고성능이어야 한다. 안 그러면 탈 사람이 없다. 투자자 보호를 먼저 강화하지 않고 자본시장을 육성하려는 건 브레이크 없이 고속 경주차를 만드는 것과 같다. 당연한 얘기가 아니냐고? 쩝, 우리가 그 당연한 걸 잘 못한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주진형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