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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8 18:25 수정 : 2019.12.09 09:38

안순억 ㅣ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수능을 끝낸 고3 교실, 고작 서너명의 아이들과 교사가 모여 앉아 ‘법정 수업시수’를 꾸역꾸역 채워간다.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각자 대입과 재수를 준비하거나, 지긋지긋했던 과잉학습 시대의 종말을 축복하는 ‘체험학습’을 진행중이다.

현재 학교체제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위태로운 기반 위에 있는지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시험·진학·취업의 쓸모가 종료되거나 불가능해질 때 학교는 더 이상 가르침과 배움의 공간이 아니다. 관행의 시스템만 작동하는 거대한 아비투스다. 입시에 특화된 학교일수록, 끝내 ‘돈’이 되기 어려운 성적과 졸업장을 받아든 개인과 집단일수록 무의미의 값은 높아진다.

정시 확대 정책과 이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바라보는 교육계의 심정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 속에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이 깊게 새겨져 있다. 수행평가를 빌미로 교사 권력을 유지하고, 생활기록부 기재는 특정 학생만 유리하게 몰아준다고 여긴다. 수상실적과 봉사활동 등 비교과 영역은 부정과 비리의 온상으로 추정한다. 교사의 도덕성과 전문성은 통으로 의심받는다.

역행하는 제도 변화에 크게 상처를 입는 이들은 새로운 교육을 위해 앞서 달려왔던 교사들이다. 문제풀이식 체제로 급격하게 회귀하는 분위기에서 교육적 꿈과 대화들이 갑자기 디딜 땅을 놓쳤다. 수업과 평가를 혁신하고 학점제를 대비하며 변화하는 교육을 감당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이들의 좌절이 먹구름처럼 번진다.

교직이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존재론적 고민이 들어야 할 자리에 민원에 대한 불안과 사고 공포가 먼저 방어막을 친다. 폭력적 국가통제와 비민주적 관료주의를 가까스로 벗겨낸 자리에, 모든 행위를 촘촘하게 통제하는 ‘공정’과 ‘안전’의 이데올로기가 찾아들었다. 교육적 대화로 풀어낼 사안조차 경찰·언론의 전화를 먼저 받는 학교의 한숨이 깊어졌다. 지침과 매뉴얼에 따른 자기검열은 필수가 되고 ‘안녕’해진 학교에서 ‘교육과 아이’는 사라진다.

우리 교육의 하드웨어는 세계 최강이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이가 교사가 되고, 그 교원의 지위 보장을 헌법이 명문화한 나라다. 그런 우리가 이렇게 아프면 안 된다. 교육 가능의 전제는 ‘내가 만나는’ 교사의 도덕성과 전문성이다. 그 권위에 대한 신뢰다. 세상 시선이 억울할지라도, 지금의 위기를 교직 사회 내부의 엄중한 자기성찰에서 찾는 단호함이 병행돼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교사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하고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이 계층 위화감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높은 수준의 교양과 지성적 책무성을 발휘해야 한다. 업무로 연결되고 교육으로 고립되는 낡음을 버리고 교사들 상호 성장을 자극하는 학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외부의 강제력에 끌려가지 않도록 동료와 학교의 비교육적 처사들을 감시하고 자정하는 내적 통제기제를 작동시켜야 한다.

교실은 특정 능력이 부당한 권력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평등 공간이어야 한다. 공부가 부족한 아이들이 여집합 같은 존재로 취급당하면 안 되는 곳이다. 교사는 세상 모든 이들이 아이의 잘못과 무능을 볼 때, 그 뒤에 숨은 아픔과 상처를 먼저 보는 이다. 좋은 삶과 사회는 어떤 것인지, 그 삶으로 안내하는 교육적 행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잊혀진 질문’을 끝내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교육학의 어원이 된 페다고지는 삶의 현장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사랑하는 아이들의 삶의 성장을 이끌던 고대 그리스 교사에서 나왔다. 배추처럼 절여지는 상황의 무기력을 떨치고, 페다고지의 진실을 담은 교사의 햇빛 같은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지기를 기도하는 세밑이다.(평생 참교사로 뜨겁게 살다 지난 4일 운명을 달리한 나의 벗, 갈매고등학교 김주영 선생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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