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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1 18:32 수정 : 2019.12.02 02:34

김곡 ㅣ 영화감독

왜 울긴. 아파서 운다. 그러니, 낙엽 흐무지는 가을의 석양, 칼날 같은 공기를 들이쉬며 훌쩍훌쩍 코를 마실 때, 눈물의 이유를 생각하느니 고통의 원인을 생각하는 게 빠르다. 아프니까 청춘인 게 아니라, 청춘이라 더 맞은 거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감정의 기원이 고통에 있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본디 원생생물처럼 감각(자극)하면 운동(반응)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가 진화함에 따라 몸의 일부가 감각기관으로 전문화되며 운동능력을 희생하고, 그런 옴짝달싹 못 하는 몸 자체에 대한 통각이 바로 감정이라고. 그렇다면 감정은 어떤 능력의 표현이기 전에 능력 상실의 표현이다.

실로 이 사회는 얼마나 열렬히 우리에게 운동능력의 고통스러운 상실을 요구하는가. 우린 초등학교부터 이 세계의 궁극적 주권자는 꿈보다는 돈이라는 사회계약론을,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는 운명론을, 흙수저는 금수저를 꾸며주는 수사일 뿐이라는 의미론을 교육받고, 막상 사회에 나가면 운동능력은 학종에 기재된 인생 몇 줄과 남발된 자격증 몇 개로 한정된다. 사람들은 에스엔에스 업데이트를 경쟁하며 타이핑 속도를 늘려나가지만, 이는 실질적 운동능력의 둔화를 감추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만인이 운동능력을 회복하는 혁명을 꿈꾸며 투표일을 기다리지만, 혁명을 부르짖던 정치인은 막상 선출되면 어떤 자극에도 꿈틀대지 않는 운동능력의 영점으로 돌아가고, 유권자도 그럼 그렇지, 자조하고 체념하며 일상의 영점으로 복귀한다. 우린 그렇게 고통에 익숙해져간다.

한국 근대사는 또 아니랴. 멀게는 제국주의자들이, 가깝게는 독재자들이 너희는 외부 자극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으니 우리가 대신 해주마, 라며 조선의 운동능력을 곡괭이질과 새마을운동으로 한정해버렸다. 국내총생산(GDP)이 올라 몸집이 커지자 사람들은 과거의 굴욕을 부정하기 위해 운동능력을 자발적으로 늘려나간다. 입시 경쟁을 폭주했고, 아파트 투기를 폭주했고, 재벌 경영을 폭주했다. 그러나 그렇게 과시용 운동능력이 폭증하는 동안 내실용 운동능력은 곤두박질쳐,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독재정의 심복을, 그다음엔 독재정의 공주를 행정 수반으로 선출한다. 그사이 믿었던 지표들과 사회안전망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구닥다리 빨갱이 의제들은 다시 입법부 담론을 장악하고, 배가 침몰하자 행정부는 선박 소유주를 탈세 혐의로 잡으러 다닌다. 공화국의 팔다리엔 근육이 붙고 힘줄이 늘어가지만 실상은 정해진 반응, 익숙한 반응에 몰두하며, 공화국의 몸 전체는 새로운 자극을 인지하지도 또 그에 새롭게 반응할 줄도 모르는 운동능력의 영점으로 폭주한다.

이 시대, 눈물의 원천은 이와 같은 사회적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운동능력의 상실에 있다. 순전히 개인의 눈물이란 것은 없다. 언제나 사회가 먼저 아파야 개인도 운다. 사회 없이 울 수 있는 자는 없다. 로빈슨 크루소는 울지 못한다.

그러니, 공포영화 비평가 뢰트라의 말, “눈물은 투명한 핏방울이고 핏방울은 불투명한 눈물”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즉 정치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흘린 눈물은 사회 전체가 운동능력을 잃는 고통으로 흘렸던 우리 모두의 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왜 우는가’라는 추상적 질문을 ‘이 사회는 왜 아픈가’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낙엽 흐무지는 가을의 석양, 눈물은 그저 울적해서 흐른 것이 아니다. 나만의 것인 눈물이란 없다. 이 사회의 신체 어딘가가, 근육이, 신경이, 뇌수가 곯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베르그송은 운동능력을 ‘행동’이라 일렀다. 눈물의 이유를 음미할 석양을, 행동의 목적을 음미할 새벽에 양보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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