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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그 하늘 어디쯤 아직도 알라딘의 마법 양탄자가 날아다니고, 천 일을 밤새워도 다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거리마다 묻혀 있을 것만 같은 도시. 그곳에 어떤 독재자가 어떻게 원유탱크를 끌어안고 버티는가는 두 번째 문제였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류의 공동 재산인 문화유적쯤은 어찌 되어도 좋다는 포악한 침략자가 그보다 훨씬 위험했다. 그들은 오천여 년 전 자연과의 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래바람에 시달리며 황무지를 일구던 인류의 조상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듯 최초로 고물고물한 쐐기문자를 만들어 서로 소통했을 때의 환희를 알고 있을까? 상상할 수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식의 반달리즘이 비단 이라크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포격에 구멍이 뻥 뚫린 바그다드 박물관의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굴착기에 밀려 초토화된 백제의 돌무지무덤과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진 풍납토성 경당지구를 생각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유물 발견 신고를 하면 즉각 공사가 중지되고 발굴에 들어가야 할 것이 두려워 쉬쉬하며 쓸어내고 있을 수많은 토기와 인골을 생각한다. 특정한 학맥이나 관할 지방 자치단체의 지원이 없으면 냉대 속에 방치된 채 사라져버리는 우리 고대사의 숱한 비밀들을 생각한다.
물신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돈은 무엇과도 경쟁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이다. 그러하기에 돈을 칭송하고 숭배하지 않는 자들의 이야기는 무조건 ‘배부른 소리’가 되어버린다. 문화재의 보존이 곧 재건축 불가일 때에, 유물 발굴 때문에 고층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사를 포기해야 할 때에, 문화 예술이 ‘산업’이 되어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끝없이 배고픈 자본주의의 논리에 밀려 배부른 소리나 지껄이는 팔자 좋은 궁도령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최첨단 아파트에 살며 미끈한 도로 위를 달리는 것만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전부일까?
일본 교과서 ‘개악’의 주요내용은 실상 그다지 새롭지 않다. 야마토시대 한반도가 일본의 속국이었다느니, 다케시마를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느니,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 어딘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지배했다느니 하는 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공들여 써온 허구의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 거짓의 피해자이며 진실의 증언자여야 할 우리가 스스로를 알고 지키지 못해왔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고대사를 말살 조작하기 위해 〈삼국사기〉를 부정하고 조작에 다름 아닌 〈일본서기〉의 초기 기록마저 정사로 주장할 때, 우리는 식민사관과 역사낭만주의에 사로잡힌 채 교과서의 연대표나 달달 외우며 개발논리 속에 문화 유적유물의 파괴를 방관해왔다. 일본에서는 고대 유적인 저수지 둑이 하나 발견되면 그 자리에 박물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반면 우리는? 고고학자들이 아파트 조합원들과 드잡이를 하며 조각난 유물들을 주워 담기에 바쁜 형편이다. 조상님들께 부끄러운 일이다. ‘독도는 우리 땅’ 노래나 불러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돈이 되지 않는 역사를, 돈이 되지 않는 문화와 예술을, 돈이 되지 않는 가련한 가치를 생각한다. 그들을 지켜내지 않고서야 미래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땅덩이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나는 또다시 배부른 소리를 한다.
김별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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