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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6 19:55 수정 : 2005.03.06 19:55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공동체 구상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북핵 문제를 비롯해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와 중-일의 아시아 패권경쟁 등 외적 환경의 악화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및 배상을 요구한 노 대통령의 3·1절 경축사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이후 한국과 일본 사이에 흐르고 있는 냉기류도 그 요인이다.

동북아 공동체 구상은 노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한단계 발전시켜 한국 주도로 동북아 전체의 평화번영 체제를 구축한다는 야심적 프로젝트였다. 따라서 이 구상이 만약 좌절될 경우 그 여파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전반에 미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의 자주외교 노선도 부분적으로는 동북아 공동체 구상과 맥이 닿아 있었다. 한·중·일 세 나라가 과거의 불신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공동번영의 관계를 구축할 경우 한반도에서 미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줄여 이른바 민족자주 노선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었다.

따라서 이 구상의 후퇴 내지 좌절은 노 대통령에게 동아시아 외교 정책의 기본궤도를 전면 재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국면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노 대통령은 과거보다 더욱 종속적인 대미외교 노선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참담한 선택을 강요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북아 구상의 후퇴는 이미 부분적으로 가시화되었다. 청와대는 지난해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를 동북아시대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구상을 추진할 주체의 명칭에서 ’경제’를 삭제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구상의 첫발이 세 나라 경제협력 문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경제영역을 제외시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 주도의 동북아 공동체 구상이 말 그대로 구상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중국과 일본이 한국의 이런 구상에 사실상 전혀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이미 동아시아에서 경제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자국 중심의 공동체 구축을 위한 주도권 쟁탈전에 돌입한 상황이다. 미국 역시 아세안 지역의 경제주도권 쟁탈전에 뛰어든 상태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 지역에서 일본의 금융지배권을 붕괴시키고 이를 낚아챈 미국은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경제 및 군사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을 자극하는 등 대중국 대결구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동북아 공동체의 모델로 삼았던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숙적관계에 있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화해하지 않고서는 재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아데나워 독일 대통령과 같은 탁월한 두 지도자와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 같은 인물의 헌신적 노력도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독일은 이후에도 2차 세계대전의 침략행위와 반인륜적 범죄행위 사죄와 피해 배상, 나치 관련자의 단죄 등 과거사의 청산을 통해 주변국들의 불신을 깨끗이 씻어냄으로써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키고 통일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불신과 적대적 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외교적 입지 또한 극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북아 공동체 구상은 한국이 강대국의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의 발판을 담보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 첫걸음은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가져왔던 유럽 석탄철강공동체처럼 경제 협력분야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동북아시대위원회에 취임 초기와 같이 경제기능을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노 대통령은 외교팀의 재정비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 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3대 국정과제로 제시한 동북아 공동체 구상이 좌초될 지경에 이른 것은 어쨌든 외교팀의 주변 정세 오판과 협상력 부재 등 총체적 역량 미숙에서도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장정수 부국장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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