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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1 18:37 수정 : 2005.02.21 18:37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달 20일 마침내 정기국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선언했다. 그는 “다양성을 포함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공유하고, 열린 동아시아공동체의 구축에 적극적인 구실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중대한 발언이다.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지역주의 구상 아래 일으킨 전쟁에 실패한 것이 60년 전 일이다. 이후 파국 속에서 고통스런 재건의 길을 걸어온 일본 정부와 국민은 지역주의를 완전히 잊도록 노력해 왔다. 전후 60년을 거쳐 이제 총리가 새로운 지역주의의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그 역사적 의의는 거대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전혀 주목받지도 화제가 되지도 못했다. 신문들은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았고, 사설로 다루지도 않았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의 관심을 끌려는 노력을 하거나 설명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현재 일본의 위기적 양상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이것은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야당·미디어·국민을 모두 뒤덮고 있는 일본병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2001년 11월 ‘동남아 국가연합(아세안)+3’ 정상회담의 위임을 받은 연구그룹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하며-평화·번영·진보의 지역’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 시발점이다. 이런 꿈 같은 구상을 동남아 정상들이 지지하고, 아세안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중국도 동참하면서 사태가 움직였다. 일본 정부는 위기감 속에 2003년 12월 도쿄에서 일-아세안 정상회의를 열어 양쪽이 ‘동아시아 창조’에 공헌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한 협력을 심화’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2004년 5월18일에는 관민일체의 일본·동아시아공동체 평의회가 출범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회장에 취임했다. 일본 국제포럼, 국제문제연구소, 평화안전보장연구소, 종합연구개발기구, 환일본해경제연구소 등 연구기관의 대표들도 가세했다. 평의회는 올 봄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교수를 주임으로 한 태스크포스가 진행해온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현상·배경과 일본의 국가전략’이라는 보고서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무성은 다나카 히토시 외무심의관을 필두로 한 아시아지역 정책과 차원에서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동남아 나라들과 한·중·일로 구성된다면, 그 지리적 범위는 대동아공영권과 그대로 겹친다. 그렇다면 과거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한 새 지역 의식을 토대로 한 새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중국이 너무 성가시니 우선 동남아 나라들과 얘기해 공동체를 만든다는 소극적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지향한다면, 오히려 먼저 한·중과 일본의 화해, 상호이해, 협력을 근본에 둬야만 한다. 그렇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해 오랫동안 중국 방문을 거부당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고 역사문제에서 분명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채 동아시아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남아 나라들을 한 축으로 하는 공동체를 만든다면, 동북아 지역에서 공동체, 공동의 집이라는 또 하나의 축이 반드시 나오게 된다. 나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1995년부터 제안해 왔는데,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동북아시아 시대의 도래를 맞이해 동북아의 번영 공동체, 평화 공동체를 지향할 것을 첫번째 정책구상으로 내세웠다. 2003년 8월에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이 시작됐다. 지난해 6월에는 한국에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동북아시대위원회가 설치됐다. 결국 현실적으로도 동북아 공동체(공동의 집)라는 구상과 6자 회담이라는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동아시아공동체를 생각한다면 동북아 공동체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1월4일치 석간에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미국을 배제한 형태로 동아시아의 틀 만들기가 진행되는 것을 우려해 대항책으로 한·미·중·일·러 5개국 협의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6자 회담이 교착 상태여서 우선 북한을 뺀 5개국으로 지역협력을 해나가는 안이 떠오르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제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격월간 〈포린어페어스〉 1·2월호에서 “동아시아에 새 안보구조를 만든다”는 부시 행정부의 과제를, “예상치 못한 형태로 동북아에 출현한” 6자 회담 틀을 활용해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배제되는 추세가 피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면, 동북아 구상을 분명히해 여기서 미국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축을 지향한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선언은 일본과 그 국민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최대의 과제는 그 목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국민은 이런 구상을 부정하고 아시아에 등을 돌린 세력과 싸울 필요가 있다. 이미 일부 우익 미디어에선, 동아시아 공동체는 〈아사히신문〉과 다나카 심의관이 추진하고 있다는 식의 반중국파의 공격이 시작된 상태다.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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