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20 19:36
수정 : 2005.02.2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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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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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누군가. 자산 규모로 보나 기업 경쟁력으로 보나 단연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다. 작년 어느 발표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21위며,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 상승 속도는 세계 1위라고 한다. 생산 제품 중 스무 개 가까이가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작년 한 해 동안 삼성전자 한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거의 11조원에 달한다. 아예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기업이 애국한다는 대통령의 말마따나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국제 활약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누군가. 유명한 이야기지만 삼성엔 노조가 없다. 참으로 신기한 일 아닌가. 아무리 대우를 잘 해준다고 하지만, 그 많은 사업장을 거느린 삼성에 노조가 없다는 것은. 당연히 노조 설립 방해 공작이 있었을 거라 생각되지만, 국가기관의 조사도 신통치 않고 언론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난 11일 단병호 의원은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위해 민주노총에 가입한 종업원에게 1억원을 주면서 탈퇴를 종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언론은 삼성의 국제 활약상을 전하는 정성의 10분의 1도 쓰지 않았고, 그런 ‘설’이 있다고만 간단히 전했다.
누구나 가슴 뻐근케 한 일로는 삼성을 알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지만, 가슴 아프게 한 일로는 삼성이 누군지 도무지 알려고 하지를 않는다. 이런 일에 관한 한 삼성은 유령처럼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유령이 앉아 있다. 삼성의 노동자들이 그 대단하다는 방해공작을 뚫고 노조설립 신고서를 들고 가면 유령이 먼저 와서 등록을 하고 갔다고 한다. 뭔가 조사를 하면 삼성이 했다는 증거는 없고 유령이 했다는 증거만 나온다.
지난 14일 법원은 변칙증여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 대한 선고를 연기했다. 사실에 대한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의 10년 전의 사건이다. 그것을 5년 전 법대 교수들이 고발했고, 고발 후 3년이 넘은 뒤에 검찰이 기소를 했으며, 이제 햇수로 10년이 되어 가는데 1심 선고가 다시 연기되었다. 주당 최소 8만5천원에 거래되던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 등에게 주당 7700원으로 해서 125만주를 넘겼다. 회장을 가장 존경한다는 사장이 총대를 멘 것이다. 누구나 빤히 알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재판정에서는 사건의 정체가 이상하게 모호해진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은 작년 7월 삼성의 전·현직 노동자 12명이 ‘누군가’에 의해 휴대전화 불법복제를 통해 위치 추적을 당했다며 고소한 사건에 대해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삼성그룹 내에서 노조 결성을 추진해왔던 사람들이었다. 위치추적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시점은 회사 차원이나 노조 차원의 행사가 있을 때였다.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가. 피해자들은 당연히 삼성 관계자들을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누군가’ 고소인들의 휴대전화를 복제한 사실은 밝혀졌으나, 그 ‘누군가’를 찾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누군가’를 기소 중지했다”고 밝혔다. 또 “그 ‘누군가’를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와 삼성 관계자들의 연관 여부도 밝힐 수 없어, ‘누군가’가 밝혀질 때까지 수사를 중단하는 참고인 중지결정도 내렸다”고 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검찰은 책임질 ‘누군가’가 없다고 한다. 삼성 스스로도 억울하다고 한다. ‘누군가’를 꼭 밝혀달라고.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또 유령인가.
단병호 의원은 혼자서 이렇게 외쳤다. “무엇이 삼성을 국회 증언대에도 세울 수 없게 하고, 법정에도 세울 수 없게 하는가.” 내가 보기엔 그도 알면서 물어본 말이다. 삼성이 누군지를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유독 그만 모를 까닭이 있겠는가.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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