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쌓은 신뢰로 씻었지만
다시 권위주의적 통제 살아나
신뢰냐 치욕이냐 성찰에 달려 있다 <한국방송>(KBS)이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방송사가 국민들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방송 중계차가 봉하마을에서 쫓겨났으며, 기자들도 대한문 앞 분향소와 시청광장에서 시민들의 거부로 취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민장 기간 내내 한국방송 뉴스와 편성에 대해서 시청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시청자들은 한국방송을 거부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시청률 조사에서도 감지되었다. 한국방송 9시뉴스의 시청률이 <문화방송>(MBC)의 ‘뉴스데스크’보다 높았는데, 장례 기간 중에 한국방송 9시뉴스의 시청률이 급격히 하강하여 문화방송보다 낮아진 경우가 생긴 것이다. 한국방송은 홈페이지에 ‘한국인의 중심채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한국방송이 시청자들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한국방송 위기의 본질이다.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자본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공영방송 한국방송에 위기의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위기의 징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촛불시위 때는 뉴스 화면에 나온 반정부 내용을 삭제하기도 하였으며, 제야의 방송에서는 정부를 성토하는 군중의 함성을 음향효과로 대체하기까지 하였다. 국민장 기간에서는 정부비판의 인터뷰 내용을 삭제하라고 보도본부장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보도본부장이 정치적인 검열을 통해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삭제하는 권위주의적 언론통제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방송의 엠블럼에는 공정과 공익을 추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방송은 일찍이 1974년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구조를 바꾸었다. 과거 공보처의 방송에서 국민의 방송으로 변경된 것이며, 그 역사는 벌써 35년을 넘었다. 그런데 다시금 국영방송체제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목소리만 비판 없이 주례 라디오방송으로 전달되고 있으며, 정부가 요구하는 정책 프로그램을 편성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언론재단의 2008년 조사에 의하면 한국방송은 가장 강력한 영향력(31.6%)을 갖고 있으며, 가장 신뢰(30.1%)하는 미디어로서 신문이나 인터넷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방송이 시청자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1년 만에 한국방송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누구보다도 지난해 8월 사장으로 취임한 이병순 사장의 책임이 중차대할 것이다. 이병순 사장은 한국방송이 과연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이었는가에 대해서 답해야 한다. 아울러 정연주 사장을 무리하게 해임한 유재천 이사장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방송사 내의 건전한 비판세력으로서 노동조합이 공정방송을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재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정권하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층에서는 한국방송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다. 그런데 그들이 정권을 잡은 뒤 한국방송에 자신들의 사람을 앉히고 내용을 통제하고 있으니, 국민이 나서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한국방송이 ‘땡전뉴스’를 하면서 정부의 일방적인 나팔수로 전락했을 때 우리 국민들은 시청료 거부 운동으로 한국방송을 응징했다. 이러한 치욕의 역사로부터 신뢰도와 영향력이 최고인 미디어로 바꾸는 데는 지난 10년간 한국방송 구성원의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금 한국방송에 대해서 국민들이 준엄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방송 구성원들의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한국방송을 버리고 지난 10년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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