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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1 18:40 수정 : 2009.03.11 21:55

왜냐면

재반론/‘학원보다 못한 학교?’에 대한 정혁 선생님의 반론을 읽고

내 주장의 핵심은 수능과 대별되는 내신교육의 독립적 가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한 학교는 학원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필자의 2월17일치 칼럼(‘학원보다 못한 학교?’)을, 내가 학생들을 자퇴하도록 꾀어냈다는 의미로 읽었다면 엄청난 오해다. 나에게 자퇴 문제를 상의하는 경우들은 예외 없이 자퇴하려는 학생과 이를 말리려는 부모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지속되어 양자가 모두 정신적으로 녹초가 된 상황이었다. 이때 내가 몇 가지 전제조건(특히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관리 능력)이 충족된다면 “자퇴해도 된다”고 말하면, 생각보다 쉽게 문제가 해결되고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던 것이다.

내가 주장하고자 했던 핵심은, 수능과 대별되는 내신교육의 독립적 가치를 확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핵심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수능은 수능적이고, 학교교육도 수능적이다. 물론 대학이 수능 중심으로 선발하니까 학교교육이 수능화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입시가 목전에 놓이지 않은 중학교나 초등학교에서도 수능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한국 교육이 ‘주입식 교육 패러다임’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주입식 교육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한, 학교는 학원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1차대전을 배우며 참호 안에서 대기하는 병사의 상황과 심리를 토론하고 발표하도록 하는 교육은 학원이 작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줄줄 외우도록 해서 객관식·단답식 문제로 점수매기는 교육은 평균적으로 학교보다 학원이 더 잘하게 되어 있다. 학원은 제한된 시간 동안 더욱 효율적으로 주입하기 위해 치열하게 시장경쟁을 하며, 이에 더하여 강력한 금전적 보상기제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학교를 학원과 경쟁시켜서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한다. 학벌 획득을 위한 경쟁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완전한 성공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은 가능하다. 학교에서 학생을 더 오랫동안 붙잡아놓고 교사를 ‘빡세게’ 굴리면, 어쨌든 사교육비는 얼마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입식 교육의 패러다임 테두리 안에서 정부에 반대하여 ‘경쟁을 완화하자’고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창의적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하자고 주장할 것인가? 내가 보기엔 후자가 더 전망이 있다. 문제는 전교조다. 전교조는 창의적 교육을 위한 콘텐츠를 교과별 교사모임 등을 통해 이미 확보하고 있음에도,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활동에 무게를 싣지 않는다. 오랜 정파싸움과 걸핏하면 ‘신자유주의’를 들먹이는 습관, 그리고 ‘노조’로서의 타성에 발목을 잡혀서다. ‘참교육’을 외치며 ‘노조 이상의 노조’를 표방하던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왜 글 제목이 신해철과 손주은이냐고? 다음 두 글을 비교해 보라. “나는 근미래에 뉴미디어를 이용한 홈스쿨링과 사교육이 지식의 전수를 담당하며, 가정과 공교육이 개인의 품성 함양과 사회화를 맡는 형태로 교육의 시스템이 획기적인 변화를 맞을 것이라 본다.”(신해철, 2월28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온라인으로 학습이 가능한 세상인데 꼭 매일같이 학교에 가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일주일에 한 이틀만 학교에 오게 하고, 대신 학교들을 통폐합하면 절감되는 예산 갖고 원어민 교사 엄청 데려와 학교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2월16일치 <조선일보> 인터뷰)

둘의 공통점이 느껴지는가? 이들은 모두 주입식 교육은 학교보다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가 더 잘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알고 있는 교육은 주입식 교육밖에 없다. 그래서 실질적인 결론은 공교육의 폐기, 사교육으로의 투항이다. 신해철과 손주은은 퍽이나 다른 인생 역정과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주입식 교육 패러다임’의 포로들인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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