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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8 17:37 수정 : 2009.03.08 17:37

왜냐면

책읽기가 학습과 평가 도구로 쓰이는 순간
책읽는 즐거움은 책읽는 괴로움으로 변질
공교육 정상화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부산 지역 학교들의 독서교육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대입제도의 변화를 불러올 듯하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19개 대학과 부산시교육청이 2월23일 학생의 다양한 독서활동 내용을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협약을 맺었다. 수능과 내신 위주 선발에서 벗어나 잠재력과 창의력을 지닌 신입생을 뽑기 위해 독서 이력을 전형자료로 활용하는 입시모델을 도입하겠다는 의도이며, 대학과 교육청이 합심해 만들어 낸 새 전형방법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입학 사정관제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면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 영역의 기록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독서 이력이 학생의 전공에 대한 소양을 간접 평가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맞춤형 인재를 발굴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는 대학의 기대도 무리는 아니다.

점수 위주의 학생 선발이 비교육적이고 소모적인 경쟁을 불러일으킨다는 데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며 그 정형화된 입시 틀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그렇다고 독서 이력의 반영이라는 새로운 전형방법의 채택에는 왠지 선뜻 나서기가 두렵다. 독서란 지정교과처럼 강제된 부담이 되어서도, 도구화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편하게 읽고 싶을 때 숨쉬기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책 읽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학생들에게 자양분이 되고 풍부한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책읽기가 ‘학습과 평가의 도구’로 쓰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책읽기의 즐거움이 학생들의 괴로운 학습노동으로 바뀔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행한다 해도 대학입시에서 유리한 위치 선점을 위해 역기능이 먼저 발생하는 우리의 특이한 교육환경을 생각해 볼 때, 평가의 기술적 측면에 관한 우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대독·대행 등 독서 사교육이 발빠르게 조장될 것이며, 독서내용 부풀리기, 학부모·학생·교사 사이의 평가 시비 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문제풀이식으로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독서활동은 또다른 입시 부담만 가중시키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학교에서 독서활동 관리나 체계화를 누가 담당할 것인지, 학생의 잠재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독서활동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을지, 또 대학에서 어떻게 그 결과물을 신뢰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독서 활성화는 언제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은 새로운 입시제도로 만드는 게 아니라 독서를 위한 물적·인적 토대, 즉 독서 환경 인프라 구축의 강화를 논하고 또 노력할 때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언제 어디서나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상관없이 손만 뻗으면 그야말로 ‘책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공간 마련과 분위기 조성이 책읽기의 제일 중요한 조건이다. 현재 공공도서관의 책 구입 예산은 정말 턱없이 모자란다. 그나마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중앙정부가 직접 지원하던 공공도서관 책 구입 예산을 지자체 재량으로 넘겼다. 국가가 이같이 보편적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김으로써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문화적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학교도서관의 활성화로 어린 시절부터 모든 계층이 자발적으로 책을 골라 읽는 문화를 조성해 주는 것이 평등교육의 실천이다.

신순용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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