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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8 20:17 수정 : 2009.02.18 20:17

왜냐면

물류라는 ‘경제적 욕망’ 넘쳐나지만
문류라는 ‘문화 인프라’ 채워져야
동방 최고 문장가 ‘최치원’을 코드로
동아시아 해상 문류와 물류의 전통 꿰자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새만금’은 거대한 물류의 이미지를 수반한다. 거기서 사람들은 산업단지·관광단지·신항만·국제공항·물류기지 등을 구상하며, 돈과 상품 그리고 물량화된 사람(관광객)이 유통되는 공간을 구상한다. 새만금에서 우선적으로 시행될 사업이 관광단지 조성이다. 새만금 사업비의 대부분은 산업용지가 늘어나면서 추가되는 성토작업과 전력·수도·항만·도로 등의 인프라 구축에 들어간다. 이처럼 새만금에는 토목적 발상의 ‘경제적 욕망’이 넘쳐나지만, 그 공간의 문화적 성격과 콘텐츠에 대한 검토와 논의는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물류는 반드시 ‘문류’(文流)를 수반한다. 돈이 흐르고 상품이 흐르고 사람이 흐르는 것은 곧 문화가 흐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새만금 개발은 단순한 물류사업의 구상을 넘어 문류의 ‘콘텐츠웨어’와 스토리텔링을 보완해야 한다. 문류는 모든 것을 물량으로 치환하는 물류의 거친 상처를 치유하며, 공간의 품격과 부가가치를 높이고 또한 브랜드 가치를 창출한다.

신시도·무녀도 등의 섬들로 이뤄진 고군산군도와 연안의 옥구 일대에는 동방 최고의 문장가라는 최치원에 관한 신비한 설화와 전설이 널리 분포한다. 그 핵심에 최치원이 옥구 내지 고군산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설이 있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를 비롯한 문헌에서 최치원이 20세기 초반까지 고군산 일대에서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지식인이었던 최치원의 문화유산과 스토리는 서해안 시대 및 새만금 개발과 결합해 ‘환황해권’의 ‘문류’(문화 소통)를 상징하는 문화 콘텐츠로 개발할 잠재성이 풍부하다. 단적으로 새만금 방조제가 단지 ‘세계 최장의 방조제’라는 건조한 물량적 개념으로 불리는 것보다 ‘문창후 최치원의 길’로 수식되는 것이 더 품위 있고 가치 있다. 지금 우리는 새만금에 대해 이런 문화적 고민을 진지하게 던질 시점에 와 있다. 그러므로 이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새만금 최치원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단지 최치원 한 사람을 부각시키자는 제안이 아니다. 그보다 ‘최치원’을 핵심 코드로 삼아 서해 연안 및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해상 문류와 물류의 전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21세기 해양 교류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비전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대학, 지역 시민사회와 주민, 관련 학계, 종친회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며, 중국에서 최치원 기념사업을 하는 양저우(양주)시 등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김성환 군산대 철학과 교수·문화사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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