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2.01 19:51 수정 : 2009.02.01 19:51

왜냐면

일부 보수신문 단어 하나 빼고 해석해
무력없이 동맹·신념만으로
파시즘·공산주의 이겼다고 오도
이는 곧 한-미동맹과 자본주의로
북 제압할 수 있다는 의도적 왜곡 아닐까

우리나라 대부분의 신문들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사를 잘못 보도하고 있다. “앞선 세대들이 미사일과 탱크만으로가 아니라 굳건한 동맹과 지속적 확신으로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제압했다”(earlier generations faced down fascism and communism not just with missiles and tanks, but with the sturdy alliances and enduring convictions)는 부분에서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중앙일보>는 1월22일 김영희 대기자의 ‘오바마 취임사를 듣고’라는 1면 기사에서 “앞선 세대들은 미사일과 탱크가 아니라 튼튼한 동맹과 지속적인 확신을 무기로 파시즘과 공산주의와 대결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오바마 취임사 내용을 전하면서 “앞선 세대는 탱크와 미사일로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제압했던 것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와 동맹, 꺾이지 않는 확신으로 제압했다”고 썼다.

대부분의 다른 신문들도 영어 원문의 ‘just’를 빠뜨리고 번역해 보도했는데, 위 문장에서는 ‘just’가 있고 없음에 따라 전체 문장의 뜻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이기는 데 무력뿐만 아니라 외교와 이념도 작용했다는 뜻인데, 무력 없이 동맹과 신념만으로 이겼다는 뜻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도를 통해 우리나라 언론은 오바마를 역사에 무지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연합국들의 무력에 항복했고, 소련의 붕괴는 1980년대 미국의 강한 군사력에 영향받은 바가 크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취임식에서 ‘힘의 신중한 사용’을 강조하면서 ‘말의 신중한 사용’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취임식장에서 대법원장이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 선서를 인도하자 멈칫거리며 따라하긴 했지만, 내용엔 전혀 차이가 없어도 혹시 나중에 문제 될까봐 다음날 다시 선서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신중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오바마의 말을 오역함으로써 많은 신문들이 오바마를 욕되게 하는 한편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다.

좋은 학교 다니며 영어공부 잘했을 큰 신문사 기자들이 이렇게 기본적인 문구조차 무지나 실수로 잘못 번역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북한 공산주의도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굳건한 한-미 동맹과 자본주의에 의해 제압될 수 있다는 반북주의자들의 신념을 확산시키기 위한 의도적 왜곡이 아닐까?


이재봉 원광대 교수·정치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