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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31 20:14 수정 : 2008.12.31 20:14

왜냐면

해임을 각오하고 씁니다
쫓겨난 일곱분과 똑같이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분들이 특별하지 않습니다
부당징계 당장 철회해야 합니다

저와 저희 반 아이들은 진심으로 이번 일제고사로 징계를 받으신 일곱 분 선생님들께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 일곱 분 선생님과 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교장·교감 선생님을 잘못 만나 마른 하늘 날벼락 같은 징계를 당하고, 누구는 너그러운 교장·교감을 만나 같은 일을 하고도 조용히 넘어가는 상황, 이것이 얼마다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일입니까?

저는 지난 10월10일 저희 반 아이들에게 일제고사와 관련한 학부모 편지글을 배부했고, 13일 교장 선생님 허락도 없이 학부모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교장실에 불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올해로 다섯 번째 맡는 담임, 해마다 학기 초와 학기 말이면 늘 학부모님께 담임편지를 드렸던 저로서는 담임편지를 보내기 전에 교장 선생님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10월13일 아침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가져 온 저희 반 학생은 7명이었습니다. 모두 개별적인 가정사를 사유로 썼지만 그 어떠한 체험학습도 인정할 수 없다는 교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5명은 체험학습을 포기했고, 교감 선생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2명은 끝까지 시험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1월 말, 바쁜 일정으로 반 아이들 특성화고, 전문계고 원서를 쓰고 아이들과 마지막 추억을 위해 1박 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너무나 엄청난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아이들과 기차 여행을 떠나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따뜻한 방안에서 웃고 즐기는 시간에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부당징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있었고, 파면과 해임을 당하신 선생님들의 밤샘농성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다시 10월 초 저희 반 교실을 떠올렸습니다. 일제고사를 치르기 1주일 전, 조회시간 제가 교실에 들어갔을 때 저희 반 아이들은 전날 하굣길에 청소년 단체에서 나와 나누어준 일제고사 반대 버튼을 달고 있었습니다. 마침 저도 일제고사 반대 버튼을 달고 있었기에 아이들과 마음이 통했고, 아이들의 요청으로 학부모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일제고사의 필요성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고 편하게 행동했습니다.

물론 제가 학부모님께 편지를 드린다 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을 보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현재 우리 교육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이 저와 달라서 아이들이 시험을 보게 된다 하더라도, 부모님들이 이 일제고사를 계기로 내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결국 이러한 교육정책들이 앞으로 우리 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그 결과로 학부모와 학생이 시험을 안 보겠다고 결정한다면 저는 담임으로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교장 선생님께, 혹은 더 윗선에, 나아가 이 사회에 전달하고 알리는 통로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중징계를 당하신 초등 6명의 선생님, 중등 1명의 선생님만 일제고사 전 학생·학부모의 의견을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학부모 편지를 통해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개별적인 체험학습을 안내했으며, 저와 같은 행동을 하신 선생님들이 서울에, 또 전국에 더 계십니다. 그 수가 두자리인지, 세자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 분들은 징계받는 선생님들보다 더 처절한 마음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저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저를 그동안 덮어주신 교장·교감 선생님들에 대한 배신이고 무엇보다도 저희 반 아이들과 헤어질 수도 있는 무모한 행동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장·교감 선생님, 교육청의 장학사들이 저를 덮어주는 것이 단순히 저를 위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하나둘 알려져서 일제고사에 문제제기를 하는 교사들의 수가 크게 보도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일로 제가 우리 반 아이들의 졸업식에 같이할 수 없다는 생각를 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불의한 상황에서 침묵하는 담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저를 더욱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이번 일제고사 관련 7명 교사의 부당징계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이 분들이 다시 학교에 돌아오게 함으로써 학생·학부모·교사를 무시하는 교육정책은 절대 관철될 수 없음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파면·해임을 각오하고 이 글을 여러분께 드리는 이유입니다.

이민수 서울 오남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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