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원폭 2세 수천명 갖은 고통 시달리지만원폭 피해자 인정 못받아 생계 어려움
국가차원 실태조사 의료·생계 지원해야 12월입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어김없이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리고 이곳저곳에서 송년회 연락이 옵니다. 하지만 저는 하루 13시간 노동을 해야 하고, 주말이면 64시간 연장근무를 해야 하기에 모임은커녕 잠잘 시간과 밥 먹을 시간조차 모자랍니다. 저의 직업은 ‘간병인’입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좋아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환자’입니다. 저는 원폭 피해자를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 언니, 오빠,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로 둔 ‘원폭2세 환우’입니다. 어릴 때부터 학교를 다녀오면 늘 다리가 아팠습니다. 그럴 때면 다리를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아주 강한 충격을 주어야 통증이 조금 가라앉곤 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셋째언니도 저와 같은 병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을 앓았고, 연골이 다 삭아버린 우리 두 자매는 인공관절을 심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네 자매는 모두 피부병을 앓았고, 둘째언니도 어깨 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오빠 둘은 심근경색과 협심증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결국 큰 오빠는 뇌출혈로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할 제가 간병일을 하는 것은 생계와 수술비 때문입니다. 저는 원폭2세 환우로서 원폭 피해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 정부로부터 원폭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한국원폭2세 환우회’의 회원은 현재 500여명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보건사회연구원에서 1991년에 조사한 자료에는 이보다 더 많은 2300여명의 원폭2세들이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원폭 피해자의 아들딸로 태어나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지만 원폭2세 환우들은 무혈성 괴사증, 면역글로블린 결핍증, 다운증후군, 정신지체, 우울증, 심근경색과 협심증, 피부병, 백혈병, 근육이완증 등 다양한 질환에 시달리며 가난과 소외 속에서 아프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전후세대지만 이미 끝나버린 줄 알았던 전쟁 속 핵무기는 우리의 몸속까지 쫓아 들어왔습니다. 우리 모두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아플 때는 돈걱정 없이 마음 편히 병원치료를 받고 싶습니다. 우리는 전쟁범죄와 핵무기의 피해자로서 대물림되는 원폭의 후유증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 건강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로부터 당당히 보호받고 치료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1950년대부터 광범위한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를 벌이고 피폭자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법률을 정비해 왔습니다. 원폭2세 환우들의 경우는 한국과 비슷한 차별과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지만 다행히도 지방자치 조례를 통하여 건강검진과 의료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2세에 대한 방사능의 유전성 여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2세의 건강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조사 및 의료대책은 다양한 보완장치를 통해 마련해두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도 하루속히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및 원폭2세 환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정확한 실태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원폭2세 환우들의 생명권·생존권 보호를 위해 건강검진과 의료·생계 지원 등을 해야 합니다. 한정순 한국원폭2세 환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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