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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23 21:03 수정 : 2008.11.23 21:03

왜냐면

교육부 “주당 세시간씩” 확대 개정안 추진
한시간 이상 영어로 일해야 하는 사람 얼마나?
영어 실질적 수요 조사하지 않으면
영어교육의 비효율성·사교육만 확대재생산

교육과학기술부는 초등 3·4학년이 주당 1시간, 5·6학년이 주당 2시간씩 진행하고 있는 영어 수업의 시간 수를 늘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주당 3시간씩 진행하겠다는 교육과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러한 개정을 추진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세계화로 말미암아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게 되었다. 2) 한국은 자기 말과 글을 사용하는 사회이므로 영어 환경이 매우 빈약하다. 3) 영어 교육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영어 환경 노출과 사용 기회의 확보가 중요하다. 4) 주 1~2시간 수업은 노출과 사용 기회를 보장하지 못하므로 효과가 떨어져 사교육 수요를 낳을 뿐이다. 5) 수업 시간을 늘리면 교육 효과가 높아지고, 영어 사교육은 줄어들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이런 논리 전개는 그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고, 영어교육학자들의 좁은 안목으로 현실을 곡해하는 잘못까지 저지르고 있다. 먼저 가장 근본적인 전제인 ‘세계화 추세’와 ‘영어 환경의 부족’이라는 두 규정 자체가 뒤의 결론을 끌어내기엔 모순적이다. 세계화 이야기가 나온 지 이제 15년이 넘었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는데, 기업이나 공직자들이 우리 낱말을 영어로 바꿔 쪼가리 영어를 사용하는 현상이 심해진 것을 빼면 여전히 영어 환경은 미약하다. 거꾸로 이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라는 외국어에 반드시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상 우리 주변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빼고 한 달에 온전히 한 시간 이상을 영어로 일해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자신과 자식들에게 불시에 찾아올지도 모를 영어 요구 상황에 멋지게 대처함으로써 특별한 기회를 잡는 것이겠지만, 유학 등의 경험으로 영어에 매우 능숙한 개인이나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개인이 아니라면 이는 무망한 욕심에 불과하다. 이런 기대는 개인들 사이의 경쟁의 문제이지 국가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영어 교육을 안 해 왔다면 모를까, 엄연히 중·고교에서 많은 수업 시간을 할애해 영어 수업을 하는 마당에 ‘세계화’를 내세워 호들갑을 떠는 건 사태를 호도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먼저 점검할 부분은 중·고교에서 배운 영어가 승진시험 외에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업무 영어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무엇이 부족하고, 왜 비효율적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거품을 빼고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영어 수요를 분석하고, 내신과 입시에 짓눌린 영어 평가 방식과 중등 영어 교육 과정부터 개선해야 한다.

이런 선행 분석 작업 없이 무조건 초등 영어수업 시간을 늘리려는 정책은 영어 교육의 비효율성을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수업 시간을 늘리면 일부 개인들에게는 혹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과 바꾸기엔 사교육비의 증대나 영어 격차의 확대, 교육 균형의 와해 등 감당해야 할 부작용이 너무 크다. 신중한 접근, 근거 있는 접근을 바란다.


이건범 서울 마포구 도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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