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9.25 20:26 수정 : 2008.09.25 20:26

왜냐면

백범 ‘나의 소원’을 가르치려면
해방 이후 좌우익 대립을 설명해야 하듯
텍스트 설명만으로 국어 못가르친다 정지용의 아름다운 시나
기막힌 성장소설 현기영 ‘순이삼촌’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국어는 가장 통합 교과적인 성격이 강한 교과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우리나라 역사,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지문을 이해시킬 수도, 문학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낼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1 국어(상)에 나오는 김구의 ‘나의 소원’을 가르칠 때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좌우익 대립 상황에 대한 설명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던 김구의 사상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고요. 그럼에도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한 이승만 정권, 그에 따른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 그런 설명 없이 자구 해석만 해서는 제대로 된 수업을 할 수 없음을 교육 현장에 있는 국어 선생님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자연스럽게 그때를 배경으로 한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나 기가 막히게 좋은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국방부에서 불온서적 목록에 올려 우리 젊은이들이 읽지 못하도록 한 책)를 권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요. 명작 <태백산맥>은 또 어떻고요.

지금 대통령을 포함한 조·중·동, 뉴라이트 등 극우 세력들은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극우 시각으로 기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좌편향’으로 몰아 갈아치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권하는 역사 교과서로 공부했을 때 학생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작품은 그 시대상황을 올바로 이해했을 때만 이해가 가능한데 말입니다.

국어 교과의 또 한 영역인 ‘비문학 독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문사회, 과학기술, 문화예술 등 비문학 독해의 중요 영역의 문제는, 한마디로 ‘공동선’ 찾기 게임과 같은 것입니다. 경쟁, 권력과 힘의 논리, 경제 위주의 사고로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국어를 가르치는 처지에서, 지금의 대통령과 조·중·동, 뉴라이트 세력들은 정말로 지지리도 공부를 못했던 학생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 공부만 제대로 했어도 그렇게까지 무식한 짓은 하지 않을 터인데 ….

하긴 그 세대의 고등학교 교과서는 그야말로 한심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도 반쪽, 주로 친일문학을 했던 사람들 작품이 실려 있었고, 그 아름다운 시를 썼던 정지용 시인의 경우도 단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인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요. 지금 그들 입장에서 국어 교과서를 다시 쓴다면 아마 교과서에 실린 글과 작품 대부분이 잘려나가고, 문학작품은 전체 한국문학의 자산 중 10∼20%만으로 교과서를 만들어야 할 겁니다.

정말이지 모두 모셔다 놓고 고등학교 국어 강의를 한 학기만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면 이제 국어 교과서도 ‘좌편향’이라고 문제 삼으려 들까요?

장진희 서울 송파구 문정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