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5 20:35
수정 : 2005.01.05 20:35
2000년 온라인에서 들불처럼 번졌던 학생 두발 자유화 운동을 기억하는가? 당시 이 운동을 주도했던 전국 중고등학생연합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그릇’은 비록 두발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은 결국 학생 인권이었다. 가장 기본적 권리인 신체의 자유도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민주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율성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던 것이다. 학생들의 요구는 당시에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많은 학교에서 두발 규정을 완화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얼마 전 서울의 한 고교에서 강압적인 두발 단속에 대한 항의 표시로 학생 100여명이 집단 삭발을 하는 사건이 있었고, 최근에는 부산의 한 인문계 고교에서도 한 교사가 방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폭행과 가위질을 무차별적으로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학교에서는 최소한의 규정마저도 무시된 채 교사의 주관적인 잣대에 따라 학생들의 머리 모양이 재단되고 있다. 학교의 반인권적 규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양말과 운동화의 색상, 머리핀의 색깔과 모양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시시콜콜 간섭이다. 사회의 민주화에 따른 인권 신장이 학교의 교문만 들어서면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많은 어른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율과 규범을 익히는 시기가 학창 시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규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규율과 규범이 단정한 두발일까? 엄격한 두발 규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낡은 사고가 더 큰 문제 아닐까? 누군가를 평가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는 용모 단정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의식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교육 당국에서는 각급 학교에 있는 학생생활규정 또는 선도규정과는 별도로 학생인권규정을 제정하도록 강제해 달라. 두발이나 학생들의 개인적인 기호품, 종교적 상징물 또는 가족의 일체감을 고양하기 위한 소장품들을 지도할 때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들어 합리적으로 결정하라는 두루뭉술한 내용의 공문 발송으로 할 몫을 다했다고 자위하지 말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권고는 보수적 가치로 무장한 모범생 출신의 교사들을 결코 움직일 수 없다. 학교폭력 대책자치위원회 규정처럼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행해야 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명문화된 인권 규정을 보급하기 바란다.
홍성호/부산 낙동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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