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6 16:55
수정 : 2019.10.26 16:58
[토요판] 조기원의 100세 시대 일본
⑪ 가족 간병
할머니, 어머니, 동생까지
20년 넘게 간병해온 여성
“혼자 애쓰지 마세요” 책 펴내
간병 경험자들 책과 강연 통해
“프로의 힘을 빌려라” 조언
남성 8년, 여성 12년
건강수명 지나 누군가에게 의존
간병은 모두에게 닥칠 미래
사회적 지원 없이는 존립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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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장수 국가지만 생애 마지막 약 10년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개호(간병) 문제는 주요한 사회적 과제다. 2015년 노인의 날 행사에 참가한 일본 노인들의 모습.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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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방법이 잘못됐어요. 정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은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상담을 하는 것이었는데,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죠.”
하시나카 교코(49)는 우울증에 시달렸던 어머니, ‘인지증’(치매·일본 정부가 2004년 모욕적이라는 이유로 명칭 변경)에 걸린 할머니, 지적장애가 있는 남동생을 21년간 혼자서 돌봤다. 길게 보면 간병은 30년 이상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우울증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동생을 돌보곤 해서다. 20대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할머니에게 인지증 증상이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간병이 시작됐다. 어머니는 알코올 의존증이 생겼고, 신체 능력까지 떨어져 나중에는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 서서히 혼자서 돌보는 1인 간병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도 동생과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그는 2017년 <애쓰지 않는 개호(간병)>라는 책을 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서 애쓰지 않고 병을 앓는 가족을 돌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해도 좋다”
지난 18일 도쿄에서 만난 그는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다가 문제가 생겼던 대표적 사례로 직장에서의 갈등을 들었다. “2010년쯤 일이에요. 상사가 ‘이 이상 직장에 폐를 끼칠 테면 그만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충격이었요.” 현재는 간병 관련 상담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원래 환자의 재활을 돕는 직업인 ‘이학요법사’(물리치료사)로 병원에서 일했다. 상사의 질책이 있기 사흘 전에는 후배가 그에게 “책임감이 없다. 그만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족 세명을 혼자 돌보다 보니 조퇴와 휴가가 잦았다.
직장에 간병을 해야 하는 가족이 있다는 점은 개략적으로 알렸지만,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점이 문제를 키웠다. 주위에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직장 생활은 평온을 되찾았다. 일상적 간병 자체가 혼자 장기간 지속하기는 불가능했다. “움직이지 못해서 누워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일부터 그래요. 죽을 만드는 데 한시간, 또 죽을 먹이는 데 한시간 이상 걸려요. 엄청난 힘이 필요해요.” 인지증을 앓는 할머니는 데이 서비스(복지시설이 낮에 고령자를 맡아서 목욕과 식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를 이용했지만, 오후 4시에는 시설에서 돌아왔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선 정규직에서 시간제 노동자로 근무 형태를 바꿔야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에 ‘간병에 지쳤을 때 마음이 가벼워지는 힌트’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 개설을 계기로 간병에 대한 상담이 몰려들어 800건 이상 상담을 했다. 책은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그는 간병할 때 생기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완벽한 간병을 추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요강과 같은 기능을 하는) ‘포터블 토일렛’을 사용하는데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느낀다. (가족인데) 내가 너무 차가운 게 아니냐고 하는 상담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화가 날 때도 있다. 당연하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노트에 ‘너희(부모님)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어’라고 쓴 적도 있다. 노트에 쓰면서 감정을 분출한 것이 고비를 넘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간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해도 좋다”는 말을 꼽았다.
하시나카 외에도 자신의 간병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이나 집필을 하는 이들을 일본에서는 꽤 볼 수 있다. 도쿄에 살면서 동북 지방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를 오가며 가족을 간호했던 구도 히로노부(47)도 그런 경우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인지증에 걸린 할머니와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서 직장을 두차례 그만뒀다. 그는 ‘40살부터 원거리 개호’라는 이름의 블로그에 이런 경험을 써서 화제를 모았다.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부모 개호> 등의 책을 썼고 강연도 하고 있다. 구도가 강조하는 이야기도 하시나카와 비슷하다. 구도는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간병은 처음에 간병 태세 만들기가 중요하다. 최근에는 지역의 경험자들이 모이는 간병 카페도 있어서 정보를 효율적으로 모을 수 있다. 동료와 프로의 힘을 빌려야 자신의 인생도 착실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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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하시나카 교코는 20년 이상의 간병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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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을 하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배경엔 이 문제가 일본의 사회적 과제란 현실이 있다. 일본 남성과 여성의 평균수명은 2016년 기준 각각 80.98살과 87.14살로, 세계적으로도 장수 국가에 속한다. 다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때까지의 나이를 뜻하는 ‘건강수명’은 2016년 기준 남성과 여성이 각각 72.14살과 74.49살이다. 남성은 평균 8년 이상 그리고 여성은 12년 이상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렵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는 3년마다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건강수명을 추정하는데, 2001년부터 2016년까지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간격은 크게 변화가 없다. 고령자 간병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자녀들이 늘고 있어 이미 인구 감소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 기업에 현실적 부담이 되고 있다.
간병 경험자들이 상담을 적극 권유하는 이유는 고령화 현상이 오래된 일본에는 고령자 간병을 위한 사회제도가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상담을 하면 ‘데이 서비스’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고, 간병하는 사람을 위한 휴직제도를 어떻게 활용할지 조언도 들을 수 있다. 일본은 장기 간병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2000년 ‘개호 보험’ 제도를 만들었다. 한국은 이와 비슷한 ‘노인장기요양 보험제도’를 2008년에 도입했다. 심사를 통해서 간병이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된 65살 이상 고령자와 40살 이상 중년층은 ‘개호 보험’을 적용받아 여러 복지 서비스를 전체 비용 중 10~30%만 내고 이용할 수 있다.
바탕엔 사회적 지원 있어야
시가현에 사는 하시나카가 18일 도쿄에 올라와 인터뷰를 하고, 이튿날엔 강연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쇼트 스테이’(숙박을 겸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 동생을 맡길 수 있어서였다. 98살이 된 그의 할머니는 현재 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간병 관련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고 상담도 해주는 ‘케어 매니저’, 고령자 생활 전반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지역 포괄 상담센터’도 있다. 하시나카는 간병을 해야 할 때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이들로 케어 매니저와 지역 포괄 상담센터 직원을 꼽는다.
일본 ‘개호 보험’은 보험료 수입,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충당된다. 담당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내년 개호 보험 급여비가 11조3450억엔(약 122조8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이 가운데 중앙정부 부담분으로 2조9763억엔(약 32조2300억원)을 요구할 방침이다. 내년 사회보장비 전체로는 사상 최고액인 30조5269억엔(약 330조590억원)을 요구할 계획인데, 이는 일본 전체 예산의 30% 가까이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혼자 애쓰지 않는 간병의 바탕에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동반한 사회적 지원이 깔려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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