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7 15:04
수정 : 2019.06.2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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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89·왼쪽 세번째)가 27일 일본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에 따를 것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뒤로는 ‘일-한 단교’라고 쓴 펼침막을 내건 우익들 선전 차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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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때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
27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서 시위
배상 소송 시작한 지 27년 지나
주총 참석하는 주주들 향해 호소
우익들 “한국으로 꺼져라”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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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89·왼쪽 세번째)가 27일 일본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에 따를 것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뒤로는 ‘일-한 단교’라고 쓴 펼침막을 내건 우익들 선전 차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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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이 지났지만 아직 사과를 못 받았습니다. 이대로 내가 눈물을 흘리며 생을 마감해야 하겠습니까.”
27일 아침 일본 도쿄 지요다구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올해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89) 할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양 할머니는 미쓰비시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이날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항의 시위에 나섰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오랫동안 지원해온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정신근로대를 지원하는 모임’ 회원들 10여명, 한국에서 온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 20여명 등이 양 할머니 옆을 지켰다. 이들은 주총에 참석하는 주주들을 향해 “미쓰비시중공업은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 “피해자들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구호를 외쳤다.
양 할머니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법정 투쟁을 시작한 것은 27년 전이다.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 참여했다. 할머니들이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진행된 이 재판은 ‘관부 재판’으로 불렸다. 야마구치지방재판소는 1심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각각 30만엔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001년 히로시마고등재판소는 1심 판결을 깨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기각 판결을 내렸다. 양 할머니는 1999년 강제동원 가해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상으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다시 냈으나 2008년 패소했다. 2012년 한국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다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원고로 참여해 지난해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미쓰비시중공업도 판결에 따를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 할머니는 국민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일본인 교장이 “일본에 가면 돈도 많이 벌고 (중)학교에도 갈 수 있다”고 한 말에 속아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제작소로 갔다. 양 할머니는 27일 집회에서 “전투기에 페인트칠을 했는데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해서 지금도 오른쪽 손은 잘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먹을 것이 부족해 물을 많이 마셨는데, 화장실에 자주 들른다고 일본인 감독관이 발로 차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는 일본 기자들을 향해 일본어로 “배가 고파서 일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의 호소는 가까운 거리에서도 잘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일본 우익들이 ‘일-한 단교’라고 쓴 펼침막을 건 차량에 확성기를 달고 뒤에서 나타나 “한국으로 꺼져라”, “너희들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라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 헌법보다 국제조약인 청구권협정이 위에 있다”, “강제노동은 없었다” 같은 말을 쏟아냈다. 한국 시민단체 회원들은 28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3보1배 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한편, 미시마 마사히코 미쓰비시중공업 상무이사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일-한 양국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일-한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고 이해하고 있다”며 “한국 대법원 판결은 극히 유감이며, 당사는 일본 정부와 연락을 취해가면서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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