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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코 일본 공주가 15일 도청도 직원인 평민 구로다 요시키와 결혼식을 올리기위해 도쿄 시내 데이코쿠 호텔로 떠나며 궁내청 관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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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은 ‘신데렐라’라는 동화를 좋아하셨나요? 어린 시절 신데렐라 이야기를 읽으시고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게 되어 해피엔드로 끝났을 때는 박수를 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평민인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아마도 행복하게 살았을꺼에요. 하지만 왕자는 어떨까요? 왕족이 평민과 결혼하는 건 동화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랍니다. 몇년 전 시드니 올림픽 때 호주의 술집에서 한 처녀와 만나 결혼한 덴마크 왕자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덴마크 왕자 하면 ‘햄릿’ 아니겠어요? 전통은 일본황실보다 짧을지 몰라도 ‘뼈대’있기로는 일본 황실도 울고 가겠지요? 전 그 이야기를 접하고 그 여성보다 ‘왕자’가 더 행복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적어도 그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었으니까요. 자유롭게 여행하고 자유롭게 술집에 드나들다가 멋있는 이국여성에게 반해 결혼에 골인한 그 ‘자유’는 공주님이 지금까지는 향유하지 못한, 지금부터 펼쳐질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랍니다. 이제 평범한 주부처럼 수퍼마켓에 가서 야채도 사시고 반액 세일이라도 할 때는 다른 아주머니들하고 치열한 다툼도 경험하실 수 있을거에요.(아! 결혼 후에도 경호원이 따라 붙는다니 큰 자유는 못 누리겠군요. 그러면 미테랑 대통령 부인처럼 ‘내 주변에서 얼씬거리면서 경호하지마라’ 라고 마드모아젤 흉내도 한 번 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저질 바보 TV라 불리는 ‘후지 텔레비전’ 방송도 실컷 보실 수 있어요. 한류스타가 맘에 드시면 ‘보통아줌마’들처럼 욘사마 사진이라도 몇 장 사 주세요. 전 개인적으로 일본왕족중 한 명쯤 ‘외국인’과 결혼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에요. ‘만세일계’(萬世一系)' 일본 왕족이 어찌 외국인하고 결혼을 하겠냐고요? 덴마크왕자도 했는데요. 뭐. 그리고 그 동생은 홍콩여성하고도 했구요. 그게 더 로맨틱하지 않겠어요? 원래 일본이 외국유행을 잘 따르잖아요. 그렇게 되면 말이죠 전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한 풀 수그러들고 세계평화에도 이바지 할 거라고 믿고 있답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과 결혼하면, 적어도 공주님의 결혼식에도 참가한다는 이시하라 동경도지사가 ‘삼국인’(三國人) 같은 소리는 못 할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신혼집 얻으러 다니다 보면 외국인을 배우자로 둔 일본인도 집 빌리기 힘들다는 것도 절감 하실거에요. ‘일본 왕족, 외국인과 결혼해서 집도 못 빌린다’라는 기사가 신문에라도 나오면 일본사회도 조금 바뀌지 않겠어요? 공주님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공주님의 신랑은 일본 사람이잖아요. 아,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처럼 왕족 중에 ‘이혼’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일본의 ‘가치관’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제 일본친구가 그러는데 왕족이랑 이혼한 평민은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우익한테 암살당할 거래요. 음, 사람이 죽어선 안 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은 하지마세요. 일본속담에 ‘돌 위에서도 3년’(어떤 고난이 있어도 참아라) 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리고 해외여행도 많이 권해드려요. 물론 해외여행은 수십 개국 해보셨겠죠. 하지만 신랑과 단 둘이 미국횡단 여행 같은 걸 해보시면 어떨까요? 지금까지는 공식일정이나 경호원이 함께한 여행뿐이었잖아요? 배낭여행의 즐거움을 한 번 만끽해 보시라고요. 제 한 일본인 친구는 혼자서 미국의 시골을 자전거 타고 가는데 스무 살 남짓한 미국 애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며 ‘이 원숭아!’ (yellow monkey!)라고 하는 소릴 들은 적이 있다고 해요. 동양인이 미국을 혼자 여행한다는게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일본인만 그런 꼴을 당하는건 아니니 너무 상심하진 마시구요. 혹시 그런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평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세요. 아! 여권은 만드셨나요? 전 일본 친구에게 ‘일본천황가는 호적이 없다’ 라는 말을 듣고 아주아주 놀랐답니다. 투표권도 없었다면서요? 국민연금도 이번에 가입하신다구요? ‘일본인’의 ‘권리’가 없이 지금껏 살아오셨다는게 놀랍기만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일본인’이 아니었다는 소리일까요? 하여간 이번 결혼을 계기로 옛날 어떤 정신 나간 한국대통령이 했던 넋두리인 ‘보통사람’의 특권을 마음껏 누려보시길 바래요. 저요? 전 공주님께 아무런 악감정이 없는 ‘보통’ 사람 입니다. 일본의 ‘보통사람’에 대해서는 특히 악감정도 없고요, 일본이야기만 나오면 거품 무는 한국의 ‘내셔널리즘’도 싫어한답니다. 한국에선 ‘빨갱이’란 소리도 들어봤고 ‘쪽발이’라는 소리도 들어본 ‘비국민’(非國民)일 뿐이에요. 아마도 이 글을 보고 '皇'자를 썼다고 저를 욕하는 사람도 있을거에요. 그런 제가 ‘악감정’으로 말을 할 리 있겠어요? 일본 왕실에서 태어난 게 공주님의 잘못도 아닌데요 뭐. 그럼 앞으로 평민의 ‘특권’을 한 껏 누려보시길 바래요. 적어도 그것이 지금까지의 삶보다는 행복할 거에요. 공주님이 가지지 못한 '자유'를 가진 사람으로써의 어드바이스였어요.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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