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17 19:35 수정 : 2005.10.18 02:18

17일 마치무라 노부다카(오른쪽) 일본 외무상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항의하기 위해 외무성을 방문한 왕이 주일 중국대사를 굳은 표정으로 맞이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

보수층 구심점 노림수, 양복차림에 30초 합장, 참배반대 53% 찬성 38%

‘국익보다 고집을 앞세웠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17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에 대한 일본 내의 대체적 평가다. 그의 야스쿠니 참배가 불러올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역사인식·영토 문제 등으로 외교적 입지가 상당히 위축돼 아시아 외교의 강화가 절실한 일본으로선 큰 국익 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고이즈미 총리는 매년 참배라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고이즈미의 노림수=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참배를 통해 소신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과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중의원 해산이라는 모험을 감행하면서까지 우정민영화 법안을 관철해 그런 면모를 확고하게 드러냈다. 우정민영화 못지않은 그의 핵심공약이 야스쿠니 매년 참배다. 때문에 자민당의 총선 압승 이후 그의 연내 야스쿠니 참배는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더욱이 고이즈미 총리로선 참배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강변해온 터여서 주변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물러서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야스쿠니 참배가 정국 구심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인 자민당 지지자들 가운데선 참배 강행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참배 시기로는 일찍부터 야스쿠니 가을대제가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이후에는 11월 아펙 정상회의, 12월 동아시아정상회의와 한-일 정상회담 등 총리가 직접 참석하는 굵직한 외교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참배 형식=고이즈미 총리의 이날 참배는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면서 비난의 여지는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관용차를 타고 오전 10시13분께 신사에 도착한 고이즈미 총리는 앞만 쳐다보며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평소 여유를 잃지 않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의 참배는 일반인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과거 일본식 전통 복장으로 본전까지 들어갔던 그는 배전 앞에서 간단하게 참배를 끝냈다. 바지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함에 던져 넣은 뒤 30초 가량 합장하고는 차를 타고 신사를 빠져나갔다. 그가 신사에 머문 시간은 5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개인적 참배임을 최대한 강조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총리실 주변에선 이런 모습이 국내의 위헌 논란을 완화하는 한편, 주변국에 대해 ‘성의’를 보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 뒷모습 보이는 이)이 17일 오전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대사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로 불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동안, 오시마 대사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그러나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일본 국민을 대표하는 총리가 에이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것 자체가 전쟁 정당화의 의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1985년 8·15 공식 참배를 단행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또한 종교색 탈피를 통해 국내외 비난을 피해가려 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일본 내 분위기=일본 정부와 자민당 지도부는 사적 참배를 강조하면서 고이즈미 총리를 변호하느라 바빴다.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은 이날 “총리의 직무로서 참배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대표는 “에이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가 참배한 것은 극히 유감”이라며 형식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참배 자제를 촉구해온 연립여당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 대표도 “사적 참배라고 해도 정치적 의미가 있다”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경제단체들도 한국·중국과의 관계 악화에 따른 국익 손실을 우려하면서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당부했다.


여론도 비판적이다. <교도통신>이 총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올해는 참배하지 않아야 한다는 응답이 53.0%로 참배 지속(37.7%)을 웃돌았다.

야스쿠니 참배 문제는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에도 적잖은 영향이 예상된다. 유력 후보로 거론돼온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다음 총리도 참배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은 야스쿠니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 건립을 주도해왔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3국 냉기류 ‘6자’ 난기류

북행매듭 공조 차질 우려…정부·정치권 성토 한목소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관련 일지
“올해엔 신사 참배 중단을 특히 강력하게 요구해 왔는데….”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소식이 전해진 1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엔 낭패감과 한숨이 짙게 깔렸다. 그렇지 않아도 서걱거리던 한-일 관계가 더욱 나빠질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응은 신속하고 단호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가 있은 지 1시간여 뒤인 오전 11시20분께,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강하게 몰아붙였다. “좌절감” “기대를 저버리고” 따위의, 외교적 수사와는 거리가 먼 격한 단어가 쏟아져나왔다. 모호한 표현으로 이름 높은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도 “분노”라는 표현이 담겼다. 늘 엇박자로 걷던 정치권도 모처럼 한목소리로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를 성토했다.

그러나 외교부와 정치권의 ‘실망과 좌절’은 청와대에 비할 바가 아닌 듯하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올해 안 한-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했다.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은 12월쯤 열릴 것이라는 추정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일정과 의제가 확정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 대변인이 이를 거론한 것은 청와대의 기류가 어떤지 짐작하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20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 두 나라 사이의 현안에 대해 직설어법으로 강하게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이번 신사 참배를 두고, 노 대통령의 그때 발언이 결국 ‘소 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았다고 청와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파장은 만만치 않다. 당장 외교부 주변에선 줄곧 “검토중”이라고 밝혀왔던 반 장관의 이달 중 일본 방문 및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물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강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시마 대사는 “한-일 관계는 일본에 가장 중요한 양국관계의 하나”라며, 고이즈미 총리의 이번 참배를 “개인으로서의 참배로 이해해 달라”고 반 장관에게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 당국자는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내각 총리대신”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음달 초엔 북핵 문제 해결 및 동북아 평화에 중대 갈림길이 될 5차 6자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 회담 참가국인 한국-중국-일본의 대화와 협력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으로 불거진 한-일, 중-일 갈등과 냉기류를 세 나라가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