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후인 8월9일. B29 복스카호가 2번째 원폭을 일본에 투하하기 위해 서태평양 마리아나군도의 테니안섬을 이륙했다. 복스카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보다 위력이 1.5배인 플루토늄형 원자탄 `패트맨'이 실려 있었다. 제1목표 기타큐슈 고쿠라상공에는 짙은 구름이 끼어 있었다. 시계불량으로 첫번째 목표물에 투하를 단념한 복스카는 오전 11시2분 제2목표인 나가사키에 패트맨을 투하했다. 일시에 7만명이 희생됐다. 미국은 1942년 원폭개발계획인 `맨해탄계획'을 시작했다. 뉴 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연구소가 중심이 된 극비계획이었다. 2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다. 45년 7월16일 우라늄 235, 플루토늄 239를 원료로 하는 두개의 폭탄을 개발, 뉴 멕시코 알라모고드 사막에서 트리니티(플루토늄형) 핵실험에 성공했다. 원폭을 투하한 이유로는 `소련을 위협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인 만큼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 필요했다'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2차대전 종전을 앞당긴 것은 분명하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는 "공군이 일본을 완전히 폭격해 버리면 새로 개발한 무기가 위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가 없어질 것"을 걱정한 스팀슨 당시 육군장관의 45년 6월6일자 일기가 소개돼 있다. 미국은 원폭투하로 일본의 항복을 받는데 성공했지만 개발과정에서 미국인도 수십만명이 피폭피해를 입었다. 미국 정부는 1993년 유타주와 테네시주 등지에서 48-52년에 걸쳐 의도적으로 방사성 물질을 누출시키는 실험을 13차례 실시한 사실을 시인했다. 워싱턴주 핸포드에서도 49년 소련의 핵개발탐지에 가장 유용한 장치를 고를 목적으로 방사성 요소를 누출시켰다. 에너지부는 시설주변에 탐지기를 설치해 방사성물질의 흐름을 추적했지만 주민에게는 일절 알리지 않았다. 대기권 핵실험은 60년대까지 계속됐다. 핵실험장에서는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군인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폭심지로 돌격하는 훈련도 실시했다. 버섯구름속을 항공기로 통과하는 실험도 했다. 95년8월 발표된 정부 보고서는 정부와 관련 기관이 1931-1977년 약 1만6천명을 대상으로 방사능 인체실험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입원중인 환자에게 플루토늄을 주사하거나 정신장애아에게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식사를 주는 실험도 했다. 복역수의 신체 특정부위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실험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실험과 다를 바 없는 실험이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된 셈이다. 원폭 투하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파견되거나 네바다주와 태평양 마샬군도에서 이뤄진 핵실험에 참가했다 방사능에 피폭된 미국 군인은 약 4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금도 방광암, 전립선암, 피부암 등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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