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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겨낸 폐석면에서 흩날리고 있는 하얀 분진. 최근 조사 결과 석면 피해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일본에서 석면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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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만 관련업체서 878명 숨져
“40년 동안 10만명 사망” 예측도 나와
일본이 ‘소리없는 시한폭탄’ 석면의 공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석면을 이용하는 건자재나 기계 제조업체 노동자들은 물론 그 가족과 공장 주변 주민들의 피해 사례가 잇따르면서 산업재해를 넘어 석면공해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피해사례 봇물=일본에선 과거에도 국제기구에서 석면의 위험을 제기할 때마다 ‘석면 파동’이 일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석면 공포가 되살아난 데는 석면을 함유한 지붕·외벽재와 배관 등을 생산해온 대형 업체인 구보타가 피해자들의 요구로 지난달 29일 석면 희생자를 밝힌 게 계기가 됐다. 이 회사는 1978~2004년에 전·현직 종업원과 하청업체 직원 등 79명이 중피종 등으로 사망했고 18명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공장 주변 주민 3명에게도 중피종이 발생해 위로금을 지급했다고 발표했다. 석면으로 생기는 대표적 질병인 중피종은 폐·위·간·심장 등 장기를 덮고 있는 중피에서 발생하는 악성종양으로, 병의 진행속도가 빨라 증상이 나타나면 단기간에 사망할 확률이 높고 치료법도 없는 실정이다. 경제산업성이 석면제품 제조업체 89곳을 조사해 1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모두 462명이 피해를 입어 374명이 숨졌고, 88명을 치료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원인으로는 진폐가 154명으로 가장 많고, 중피종이 114명으로 뒤를 이었다. 석면제품을 사용해온 건설·자동차 등 관련 업체들을 합치면 피해자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피종 사망자는 95년 500명에서 2003년에는 878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 업체 종업원의 가족과 주민들의 피해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구보타의 간자키공장 주변 주민만 해도 31명이 중피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석면이 붙어 있는 종업원의 작업복 빨래를 해온 부인과 종업원의 마스크를 쓰고 놀던 자녀가 사망한 사례들도 나타났다. 석면피해 대책을 촉구해온 시민단체인 ‘중피종·진폐·석면센터’ 관계자는 “앞으로 일반 국민으로 피해가 확대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석면=군수용 공업원료였던 석면은 불에 타지 않고 썩지 않으며 쓰기 편하다는 이점 때문에 ‘꿈의 광물’로 각광을 받아 일본에선 60년대부터 수입이 급증했다. 마땅한 대체재가 없어 70년대 초 발암 위험성이 제기된 이후에도 90년대 초까지 연간 30만t 정도의 원료가 들어왔다. 95년 독성이 강한 청·다석면에 이어 지난해 10월 흰석면의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이미 약 1천만t에 이르는 석면이 주택과 학교 등 국민 생활과 가까운 곳에 축적돼 있어 앞으로 피해가 얼마나 확산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중피종은 잠복기가 20~50년에 이르러 피해 파악이 어렵다. 석면의 신규 사용은 사실상 중단됐지만 무엇보다 낡은 건물 해체과정에서 석면 먼지가 한꺼번에 방출될 우려가 크다. 최근 해체작업의 규제가 강화됐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2000년부터 약 40년 동안 10만명이 석면 때문에 사망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제기됐다.
그동안 피해자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관련 소송 또한 급증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석면 피해로 산재를 인정받은 사람은 636명에 지나지 않으며, 2003년 83명, 지난해 186명으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종업원 가족이나 주민의 피해에 대한 보상제도는 전혀 없는 실정이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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