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12 19:03 수정 : 2005.01.12 19:03

아베 자민당 간사장 등
NHK 간부들 불러 다그쳐
특집프로 대폭 수정돼 방영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 고위 인사들이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의 편집 간부들에게 압력을 가해 일본군대 위안부 문제를 다룬 특집프로그램이 대폭 수정돼 방영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정치권의 명백한 사전검열과 외압행사여서 파문이 일고 있다.

외압행사 경위=외압을 받아 내용이 바뀐 프로그램은 〈엔에이치케이〉의 ‘전쟁을 어떻게 재판할 것인가’라는 4회 시리즈의 2회분 ‘전시 폭력을 묻는다’이다. 2001년 1월30일 밤 교육채널을 통해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2000년 12월 시민단체들이 도쿄에서 연 ‘여성국제전범법정’을 소재로 다룬 것이다.

2001년 1월 중순께 방송내용 일부를 알게 된 우익단체 등이 방송중지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은 ‘객관화 작업’을 거쳐 방송 이틀 전 44분짜리로 완성돼 교양프로그램 부장의 승인이 났다.

그러나 방송 전날인 29일 오후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당시 관방부장관)와 나카가와 쇼이치 경제산업상이 〈엔에이치케이〉 방송총국장과 국회담당 국장 등 간부들을 의원회관으로 불렀다. 이들은 당시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이 교과서에 어떻게 기술돼 있는지를 조사하는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 사무국장과 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들은 “내용이 편향적이다. 일방적으로 방송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겠으면 방송을 중단하라”고 다그쳤다. 한 간부는 “교양프로그램으로 방송 전에 불려간 것은 처음”이라며 “압력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방송총국장이 참석하는 이례적인 시사회가 열렸고, 프로그램 제작국장은 “국회에서 방송사 예산이 심의되는 시기에 정치권과 싸울 수 없다”며 내용 변경을 지시했다. 시사회 직후 △민중법정에 비판적인 전문가의 인터뷰를 늘리고 △일본병사의 강간과 위안부 제도는 ‘인도적 범죄’이며 ‘일왕은 유죄다’는 민중법정의 결론을 대폭 줄였으며, 방송 직전 전 중국인 위안부의 증언을 삭제한 채 40분짜리로 단축해 방영했다.

파장=이런 사실은 프로그램 제작에 직접 참여한 현장책임자가 지난해 말 이 방송 내부고발창구에 정치개입을 허용했다며 조사를 요구해 밝혀졌다. 이런 행위는 방송 제작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사전검열 금지를 규정한 헌법·방송법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핫토리 다카아키 릿쿄대 교수는 “엔에이치케이의 예산 심사·승인권을 가진 정치가가 방송 전에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방송국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미디어에 대한 사전검열이나 다름없다”며 “방송사는 ‘자주적으로 편집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미 방영 직후 이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해 도쿄지법이 지난해 3월 제작사에 100만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양쪽은 항소한 상태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종군위안부라는 사실은 없다”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주장을 펴면서 역사왜곡을 주도해온 인물로, 이번 일과 관련해 “편향된 보도라는 것을 알고 국회의원으로서 할 말을 했을 뿐 정치적 압력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