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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2 19:43 수정 : 2006.05.12 23:32

다무라 준겐 이와쿠니시의회 의원이 11일 미군기지 확장건설을 위해 매립용 흙을 파내는 바람에 거의 평지가 된 아타고산에 올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판 대추리’ 이와쿠니에서는…

지난 11일 오후 일본 히로시마에서 서쪽으로 40㎞를 달려 도착한 인구 15만의 작은 해안 도시 이와쿠니. 전투기가 5분마다 떠오르는 주일미군 해병대 기지 활주로 앞쪽에 굴착기와 트럭이 굉음을 내며 흙으로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새 활주로를 만드는 이 공사는 공정의 75% 이상이 진행됐다. 그러나 새 활주로의 용도를 놓고 주민들과 일본 정부는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생존권 무시 강행” 표로 심판

미국과 협의를 마친 일본 정부는 도쿄 인근 아쓰기 지역의 주일미군 항공모함 탑재기 부대를 2009년께 이 곳으로 옮아올 계획이다. 아쓰기 쪽은 훈련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미 해병대 1사령부 소속 탑재기 50여대의 밤낮 없는 훈련에 지칠 대로 지친 주민들은 “더는 미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저항하고 있다. 주민들은 1962년 미군기지가 처음 들어온 뒤 귀청을 찢는 전투기 소음과 미군 3800여명이 저지르는 성범죄와 교통사고 등으로 이미 인내력의 한계에 이르렀다. 이들은 그동안 활주로 끝에 공장지대가 있어 훈련에 불편을 겪는다는 기존 부대가 새 활주로로 자리를 옮기는 것만 받아들일 수 있다.

주민들의 뜻은 지난 3월12일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하라 가쓰스케(55) 시장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치르게 된 투표에서 투표자의 89%(전체 유권자의 51.3%)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민투표는 1주일 뒤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효’가 되어 버렸으나, 지난달 23일 후속 조처로 벌인 시장 선거에서 이하라 시장이 압도적 지지율(63%)로 다시 뽑히면서 주민들의 뜻은 정치적으로 재확인됐다.

당시 자민당 공천으로 출마해 기지 이전을 지지했던 자민당 후보 아지무라 다로는 29% 득표에 그쳤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외상 등 유명 정치인의 현장 지원을 받았던 그의 패배는 ‘주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는 패배한다’는 통쾌한 교훈을 심어준 일로 평가된다. 집무실에서 만난 이하라 시장은 “국방도, 주민 생존권도 모두 중요하지만 지금은 후자가 우선”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인간띠 잇기 등 연대 빛 발해

주민들은 지난해 6월19일 3500여명이 모여 미군기지를 빙 둘러싸는 인간 띠잇기 행사를 벌임으로써 기지 이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때 이와쿠니가 속한 야마구치현은 물론 인근 히로시마현 주민들도 연대의 정신으로 힘을 보탰다. 시민단체들은 크고 작은 학습모임을 조직해 공감대를 넓혀 가고 있다. ‘주민투표를 힘으로 하는 모임’의 요시오카 미쓰노리(60) 대표는 “시장 혼자 중앙 정부에 맞서기는 힘들기 때문에 우리도 그에게 힘이 되도록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문제로 눈앞이 캄캄한 수많은 나라의 주민들에게 이와쿠니의 사례는 하나의 등대가 됐다. 이와쿠니는 다음달 23일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세계평화포럼’에서 사례 발표를 하고 연례행사인 ‘일본 평화의회’의 올해 개최지로 선정되는 등 연대의 손을 나라 안팎으로 내밀고 있다. 우리의 평택 대추리도 그 손을 잡고 함께 뛸 수 있을까?

이와쿠니/글·사진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ydhong@hani.co.kr

이와쿠니시 이하라 시장

“주민을 강제로 들어내?…상상할수 없는 일”

지난 10일 이와쿠니 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이하라 가쓰스케 시장(사진)은 “한국의 평택 대추리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며 “주민을 강제로 들어내고 기지 이전을 강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런 상황에서 대정부 투쟁을 벌이는 (대추리) 주민들도 참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주민투표 뒤에도 (일본) 중앙정부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뜻을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민들은 내 뒤를 받쳐주고 나는 그들의 대변자로서 정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중앙정부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인가?

=한국은 모르겠지만, 일본 정치가들은 시민과 시장이 강하게 반발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기지 이전을 강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시간을 질질 끌며 미루기도 한다.

-시장으로서 중앙정부의 눈치도 보일 텐데?

=중앙정부가 보조금으로 지역에 내놓는 돈도 적지 않다. 그래서 심리적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시장의 정치성향이 그다지 진보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나는 지금 이데올로기적인 반대를 하는 게 아니다. 시장으로서 기지이전 계획이 주민의 희생을 너무나 강요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국방협력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주민들의 권리가 우선이다.

이와쿠니/글·사진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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