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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무너진 장벽 앞에 기쁨의 연주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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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서치, 유럽 17개국 여론조사
폴란드·옛동독, 다당제에 후한 점수
러시아에선 ‘시장경제 반대’ 우세
“소련 해체는 불행” 63%…증가세
폴란드·체코 60% 이상 “경제 개선돼”
자녀 세대 전망엔 서유럽이 더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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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무너진 장벽 앞에 기쁨의 연주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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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30년 전인 1989년 11월, 동서 냉전과 이념 대립의 상징이던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2년 뒤에는 러시아가 중심축인 소비에트연방(소련)이 해체되면서 동유럽 공산주의 블록(동구권)이 공식 붕괴했다. 동구권 대다수 나라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급속히 편입됐다. 그 상당수는 지금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됐거나, 가입을 원한다.
옛 동구권 국가들의 국민 대다수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체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현실 정치와 경제 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구권 안에서도 유럽연합을 보는 시각과 평가의 온도차는 매우 컸다. 또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정치적 불안정 탓에 동구권 주민 대다수는 서유럽 국민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15일 미국의 글로벌 여론조사 및 연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유럽 주요국과 미국 등 17개국 주민 1만25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산주의 붕괴 30년 뒤 유럽인 여론조사’ 보고서를 내놨다. 민주주의와 정치 엘리트, 생활 만족도, 젠더, 무슬림·집시 등 사회적 약자, 표현의 자유, 대외관계 등 구체적 삶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감도를 아울렀다.
옛 동구권 국민은 다당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이행에 대해 나라별로 상당히 다른 평가를 했다. 폴란드(85%), 옛 동독 지역(85%), 체코(82%) 등에선 다당제 시스템에 후한 평가를 했지만 러시아(43%), 우크라이나(51%), 불가리아(54%)에선 지지율이 응답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시장경제에 대한 평가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특히 러시아는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한 의견이 찬성 38% 대 반대 51%로, 조사 대상국 중 유일하게 다당제와 시장경제에 대한 ‘반대’가 ‘찬성’보다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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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수도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에서 관광객들이 관광 명물인 중세 천문시계(왼쪽 건물 정면)의 인형들이 매시 정각 작동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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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붕괴 이후 경제가 더 나아졌는가’라는 질문에도 희비는 엇갈렸다. 폴란드(74%)와 체코(61%)에선 10명 중 6~7명이 ‘그렇다’고 답한 반면, ‘아니요’라는 답변은 각각 9%, 17%뿐이었다. 반면 러시아·우크라이나·불가리아 등에선 ‘그렇다’는 응답이 27~24%에 그친 반면, ‘아니요’가 53~57%로 절반을 넘었다.
러시아에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돼 존속하지 않는 것은 큰 불행”이란 문장에 ‘동의’한 응답자(63%)가 ‘동의하지 않는다’(30%)는 의견보다 갑절이나 많은데다, 세대 간 의견차도 뚜렷했다. 소비에트 시절에 대한 ‘향수’는 60살 이상 노년층에서 71%나 됐지만 18~34살 청년층에선 2명 중 1명만 동의했다. 특히, 같은 질문에 대한 전체 응답자 동의율이 2011년 50%, 2014년 55%, 이번엔 63%로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경제 사정이 나을 것 같은가’라는 미래 전망은 대체로 동구권에서 낙관적인 반면 서유럽은 중간 정도이거나 크게 낮아 대조를 보였다. 우크라이나(61%), 폴란드(57%), 체코(51%)에선 ‘그렇다’는 응답이 많았지만,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영국에선 낙관론이 20%대에 머물렀다. 특히 프랑스는 ‘그렇다’는 응답이 16%로 가장 낮았다. 이는 프랑스가 제2차 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영광의 30년’으로 불리는 경제 호황을 누렸으나 최근 10년 새 경장성장률이 평균 0.9%에 그치는 저성장세가 이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럽연합(EU)에 대한 ‘호감’은 폴란드(84%), 우크라이나(79%), 불가리아(77%) 등 동구권에서 매우 높았다. 서유럽에선 스웨덴(72%), 독일(69%), 네덜란드(66%)가 뒤를 이었고, 영국(54%)과 프랑스(51%)는 ‘호감’을 가진 응답자가 ‘비호감’보다 조금 많은 정도에 그쳤다.
양성평등과 성소수자 등 젠더 문제에 대해 여성 권리가 상대적으로 강한 북·서유럽과 전통적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남유럽 및 동구권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도 흥미롭다. ‘구직난이 심각할 경우 남성이 여성보다 일자리 찾기에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슬로바키아(59%), 그리스(46%), 폴란드(42%), 이탈리아(40%) 등에선 ‘그렇다’는 응답이 40%를 넘었다. 반면, 스웨덴(7%), 스페인(12%), 영국(14%), 독일(20%) 등에선 10명 중 1~2명만 동의해 크게 대조됐다.
‘동성애’에 대한 포용 정도도 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가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스웨덴(94%), 네덜란드(92%), 스페인(89%), 프랑스(86%)의 응답자들은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러시아(14%)와 리투아니아(28%)에선 반대 의견이 훨씬 많았으며, 그리스(48%)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47%)도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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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 회의장.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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