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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9 16:58 수정 : 2005.05.29 16:58

지난 3월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정상회의에서 토니 블레어(오른쪽에서 두번째) 영국 총리와 유럽연합(EU) 의장국인 룩셈부르크의 장 클로드 융커 총리(맨 오른쪽), 두 나라 외무장관 등이 12개 별이 그려진 대형 유럽연합기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브뤼셀/AP 연합



‘하나되기 앞장’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마저 1% 성장

1%대 성장률에 8%대 고실업, 국가경쟁력 세계 27위.

신경제로 무장한 미국의 독주와 브릭스(BRICs)의 급성장, 역동적인 아시아 경제와 맞닥뜨린 ‘늙은 유럽’의 자화상이다. 구조적인 침체에 빠진 유럽경제의 진로는 대륙통합으로 미국식 시장경제와는 다른 모델을 추구하려는 ‘유럽주의’의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몇몇국가 신용등급 걱정 처지”

독·프·이 3국 경제 침체일로=‘통합 유럽’의 주축국인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세 나라 경제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이들 세 나라의 비중은 유럽경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유럽 단일통화9유로화)를 쓰는 유로권 12개국과 거리를 두고 있는 영국과 북유럽은 상대적으로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유로권 경제는 잠재성장률(3%)은 물론, 지난해(1.8%)보다 떨어진 1.2% 성장에 머물 전망이다. 기준금리 2%의 저금리 상황에도 투자와 소비는 살아나지 않고 실업률은 8%를 웃돌고 있다. 고유가와 유로화 강세라는 외부 여건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80년대 영국병이 대륙에서 재발했다’는 비아냥을 넘어,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유럽경제가 강한 통화와 경직된 노동시장 탓에 초저성장-초저물가-초저금리 상태에 빠져있다”고 분석했다.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적자 규모도 세 나라 모두 국내총생산의 3%를 넘어서, 유럽연합 차원의 제재를 받을 상황에 처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몇몇 유럽 국가는 국가신용등급을 걱정해야 할 처지”라고 혹평했다.

주요 지표 미국 70년대말 수준

“유럽 경쟁력은 미국 70년대” =유럽연합은 지난해 동유럽 10개국을 새 식구로 맞으면서 미국에 맞먹는 경제규모를 갖게 됐다. 국내총생산(10조4천억달러) 규모는 미국(10조6천억달러)과 비슷하고, 교역 규모(2조3천억달러)는 미국(1조9천억)을 앞선다. 문제는 경쟁력과 효율이다. 지난 5년 동안 유럽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1.5%, 고용률은 64.4%에 그쳤다. 대표적인 효율성 지표인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0.7%로 미국(2.0%)의 절반에 못 미치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미국보다 30% 가량 낮다. 90년대 후반, 유럽의 1인당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2.3%(미국 3.2%),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6%(2.1%)로 각각 미국에 추월당한 뒤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로권의 국민소득, 생산성, 고용 등의 주요 경쟁력 지표가 미국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수준에 머물고 있다(그래프 참조)고 보고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동유럽 국가들이 통합되면서 ‘사회적 덤핑’에 따른 역내 노동조건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고, 외국인투자는 개도국과 브릭스로 몰리고 있다”며 “유럽경제가 저성장-고실업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0개년 리스본전략 공수표되나

‘성장과 고용’으로 전략 선회 =올 3월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은 ‘신 리스본전략’을 추인했다. 2000년 포루투갈 리스본에서 만나 “2010년까지 미국을 추월하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지식기반 경제”를 목표로 내놓은 ‘리스본전략’이 ‘공수표’가 될 지경에 놓였기 때문이다. 5년이 지났건만 사회통합과 환경보호, 통신시장 등 일부 분야를 빼곤 미국과의 격차가 훨씬 더 벌어진 탓이다. 이 때문에 ‘신 리스본전략’은 일부 회원국의 반발을 딛고 “성장과 고용”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독일은 노동시장과 사회보장제도 개편에 나섰고, 프랑스는 연금 개혁과 주 35시간 근무제 폐지를 받아들였다. 서유럽국 대부분은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낮췄다. 유럽연합 상공회의소는 이런 전략 수정을 “미래가 아닌 지금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유로권에 경기회복을 위한 금리인하와 함께 “연금 등 사회보장제 개편, 기간산업의 민영화, 고용시장 유연화, 서비스 시장 개방 등의 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충고했다.

2개의 성공 ‘영국식-북유럽식’=유럽연합이 전통적인 ‘사회적 요소’를 포기하거나 뒤로 미룬 채 ‘성장과 경쟁력’에 올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럽 정상들은 지난 3월 역내 경제통합의 핵심인 서비스시장 단일화와 관련해 “유럽 사회모델의 특성을 최대한 유지한다”는 데 합의하고, 기존안에서 공공서비스 개방과 원산자 원칙 등을 빼기로 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동유럽 등 개방 지지국에 맞서,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이 ‘역내 노동 이동 자유화가 자국의 대량실업을 초래한다’며 개방 완화를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2005년 가을부터 주요국가 선거전

유럽연합 집행위가 꾸린 특별위원회는 최근 영국, 아일랜드 등의 ‘앵글로색슨형’과 덴마크, 스웨덴 등의 ‘스칸디나비안형’을 “유럽에서 성공한 구조개혁 모델”로 평가하면서 “두 유형이 경제적 성과 측면에선 공통점이 있지만 그 과정이 매우 다르다”고 지적했다. 전자가 기업 중심, 외국인 투자, 규제 개혁, 낮은 세율과 복지 감소 등으로 성과를 얻었다면, 후자는 높은 세율과 복지를 유지하되 임금과 연금, 실업수당 등을 조정하고 교육 및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등 고용시장 개혁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회원국간 공개조정 방식으로 이뤄지는 통합과 개방의 시간표를 짜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경제침체를 타개할 유럽식 성장 전략의 ‘정체성’ 문제도 풀기 힘든 과제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현재 진행중인 유럽헌법의 찬반투표를 비롯해 올 가을부터 유럽 주요국에서 줄줄이 예정된 선거에서 나타날 유럽인들의 표심이 휘청거리는 ‘유럽주의’의 진로를 가를 푯대가 될 전망이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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