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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4 05:00 수정 : 2019.08.14 08:49

동북아 지각변동
미, 패권국가 의무 방기하고 편익만 추구
미-중 대결 격화로 ‘키신저 질서’ 붕괴
한-일 충돌도 동북아 세력재편 한 부분
한국, 아시아의 종속·독립 변수 갈림길

한국과 일본의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직접적인 발화선이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수십년 유지돼온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질서가 붕괴되고 재편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는 충돌이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블록 몰락 이후 아시아를 규정했던 미국 주도의 지정학적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패권 도전을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공공재 제공’이라는 패권국가의 의무는 저버린 채 편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격변에 처한 아시아 지정학적 질서는 멀리는 미국과 중국이 화해한 1970년대 초, 가깝게는 두 나라가 본격적 협력에 들어간 1990년대 초에 형성됐다. 소련이 붕괴한 뒤 미·중은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분업체제라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확산의 버팀목이 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5일 ‘아시아의 전략 질서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내 칼럼에서 이런 질서를 미-중 수교를 이끈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이름을 따서 ‘키신저 질서’라고 이름 붙였다. 신문은 최근 아시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결국 ‘키신저 질서의 붕괴’라고 규정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의 상대적 약화로 이런 질서가 파탄 났다는 것이다.

미국이 공황 상태에 빠졌던 2008년 금융위기는 변곡점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실존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자신의 부상을 미국이 싹부터 자르려 한다고 반발하면서 양쪽의 전략적 불신이 깊어졌다. ‘G2’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미·중의 공개적인 경쟁 구도가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는 ‘아시아 회귀’를 내걸고 중국 견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협력 속 경쟁’이나 ‘경쟁 속 협력’으로 양국 관계를 규정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협력적 요소는 남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이르면서 ‘협력’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경쟁과 전쟁만 남았다. 미-중이 4차례의 무역협상을 벌였으나 ‘미래 경쟁’인 지식재산권이나 첨단기술을 둘러싼 양쪽의 첨예한 견해차로 근본적 합의에 대한 전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패권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패권유지 비용은 오롯이 동맹국과 우호국들에 전가하는 트럼프 행정부 외교정책의 최대 인화점은 중국이 위치한 동아시아다. 경제전쟁은 이미 군사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7월 들어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해협에 미 항모를 항행시켰다. 중국도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에 석유시추선을 보내 양국 전함의 대치를 불렀다. 중국의 첫 동남아 지역 군사기지 개발이 캄보디아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제 군축체제의 한 축인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지난 2일 공식 탈퇴한 뒤 하루 만인 3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중국 미사일 보유고의 80% 이상이 중거리핵전력 사거리 시스템”이라며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중거리미사일 배치 의향을 밝혔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6일 한국과 일본이 중거리미사일 배치의 대상국임을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개적이고 강도 높은 미국에 대한 공동대응은 동아시아 지정학 질서의 균열을 재촉한다. 중국은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를 적시하며 “이웃 나라가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러시아도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7월 말 첫 연합초계비행을 동해에서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독도 영해 침범이 벌어졌다. 한반도 주변 해역이 미-중 대결의 전장이 될 수 있다는 신호다.

일본은 동아시아 재편 과정에서 미국과의 군사협력 강화 및 중·러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의 제안으로 시작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기존 동맹 체제에 대한 미국의 해태에 대응한 일본의 자구책이다. 일본은 이를 통해 미-일 동맹에서의 종속적 지위를 벗어나 대등하고 독립된 지위를 노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러-일 평화조약 교섭, 중국과의 관계 개선, 북-일 교섭을 추진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난 6월30일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아베 정부는 대한 수출규제를 감행했다. 여권의 소식통들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 한·일이 물밑 협상도 제대로 하지 못한 배경에는 북한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집요한 훼방에 감정이 상한 한국 쪽의 불신이 있다고 전한다.

더 근본적으로 이는 기존 한-일 관계 틀의 시효 만료를 말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기초한 기존 한-일 관계는 기본적으로 미국은 군사안보,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을 후견하는 체제였다. 하지만 미국은 과거처럼 군사안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데다, 한국은 몸집이 커져 ‘65년 체제’에 대한 현상변경을 시도한다.

결국 과거사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놓고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한국에 관철되지 않는 상황이 대한국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관계 악화의 근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인 경쟁자들인 중·러라는 북방 대륙세력을 견제하는 교두보인 한반도가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려는 것에 대한 일본 쪽 초조감의 발로다.

한국도 아시아의 격변하는 지정학적 질서 속에서 미증유의 위기와 기회에 처했다. 불확실성 시대는 주변 열강의 종속변수로선 생존할 수 없다. 위기다. 하지만 잘 대처하면 독립변수가 될 수 있다. 기회다. 재정립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한-일 관계가 바로 그 징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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