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우리 기업에 대한 수출 보복에 나서면서 애초 내세운 ‘양국 신뢰관계 훼손’ 사유가 국제통상 규범에 비춰볼 때 논리적 근거가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자, 이제는 전략물자 수출관리에서 “부적절한 사안이 있었다”며 또 다른 이유를 연일 꺼내 들고 있다. 국제 분쟁 해결 절차로 가면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판단하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모호하게 ‘부절적 사안 발생’으로 몰고 가는 ‘시간 끌기’ 전략을 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 통상 질서 체제인 세계무역기구(WTO)는 원칙적으로 모든 회원국에 대해 상품 수출의 금지나 제한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세계무역기구가 일반 규범으로 채택하고 있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1조(안보상의 예외조항)는 ‘전쟁 도구, 핵분열성 물질 등과 관련한 자국의 필수적 안보이익 보호를 위해’ 수출입을 규제하는 건 ‘예외’로 인정해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수입산 철강·자동차 등에 툭하면 발동해온 자국 무역확장법 제232조나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도 이 예외조항을 내세운 것이다. 아베 총리도 7일 수출규제 이유로 북한 관련을 시사하는 “부적절 사안”을 들며 안보상의 예외조항을 느닷없이 끌어들였다. 그러나 ‘부적절한 사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런 중대한 사안이라면 꽁꽁 숨길 것이 아니라 몇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기업이 관여돼 있는지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라며 “일본이 자신감 있다면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데, 자민당 간사장 같은 정치인들 입을 통해 자꾸 ‘부적절 사안’이라고만 말하는 건 무책임하고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일본 쪽은 이 ‘부절적한 사안’이 최소 3년 이상 지속된 문제라며 ‘한국 쪽 책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전략 카드를 던지고 있다. 조만간 미국에 급파될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경우 방미 목적을 극구 함구하고 있지만, 집단안보 전략물자 수출입에 대한 일본 주장의 사실관계 파악 및 협의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거래 관련 모호한 ‘부적절한 사안’ 논리로 선회한 건 세계무역기구 분쟁 해결 절차 돌입을 둘러싼 우리 정부의 딜레마를 역이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무역기구 분쟁 절차 틀에 제소한다 해도 최종 판정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어 우리 기업의 어려움이 당장 풀리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승소한다 해도 보복 철회나 피해 원상회복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승소는 일본산 다른 수입품에 우리가 맞보복하는 조처를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로부터 허가받는 정도에 그친다. 제소·승소 그다음 단계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뒤에 벌어질 일에 대한 플랜비(B)를 마땅히 마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분쟁 절차 과정에서 ‘부적절 사안’을 놓고 입증을 둘러싼 양국간 다툼 공방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도 있다. 통상당국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전략물자) 통제 의무를 성실하게 잘 이행해온 나라로 평가받아 왔다. 일본의 불합리한 주장에 차분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hani.co.krkyewan@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 뉴스룸톡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