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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호주 정부가 보트 피플 난민을 해군을 동원해 차단하고 역외 수용하는 강경 정책을 결정하자 멜버른에서 시민들이 민간단체인 난민행동의 주최로 난민 권리를 옹호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 어린이가 “망명처를 구할 권리를 지지한다. 강제구금과 역외 심사를 폐지하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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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호주를 가다-②난민 ‘역외 수용’의 명암
호주 난민정책은 정부의 철저한 통제와 관리
정부가 분쟁지역 난민캠프에서 선별해 데려와
올 회계년 1만7000명…선진국 중에선 상위권
보트 피플은 원천봉쇄…나우루 등 외국에 위탁
국내이송치료법 시행 등 정치권 변화 분위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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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호주 정부가 보트 피플 난민을 해군을 동원해 차단하고 역외 수용하는 강경 정책을 결정하자 멜버른에서 시민들이 민간단체인 난민행동의 주최로 난민 권리를 옹호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 어린이가 “망명처를 구할 권리를 지지한다. 강제구금과 역외 심사를 폐지하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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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멜버른의 한 초등학교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있었다. 연방 총선에서 한 표를 행사하러 나온 유권자들이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한 여성(35)은 소말리아 난민 출신이다. 16년 전 케냐의 난민캠프에서 자신만 호주 정부의 초청 난민으로 선발돼 호주에 정착했다. 결혼해 자녀들도 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해요. 하지만 헤어져 있는 가족이 그립죠.” 그동안 호주 정부에 두 차례나 어머니를 가족재결합 난민으로 받아달라고 신청했지만 거부됐다.
▶관련기사= 다문화 사회 호주를 가다-①이민 정책 ‘선택적 환대’의 딜레마
■ “누가 들어올지는 우리가 정한다”
호주의 난민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종종 도마에 오른다. 선진국이면서 난민에 대한 인도적 책임을 회피한다거나, 망명 희망자의 인권을 외면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엔 얼마간의 사실과 오해가 뒤섞여 있다. 호주가 난민을 전면 거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시드니에서 만난 호주난민위원회(RCOA)의 폴 파워 대표는 “호주는 1947년 이주 문호를 개방한 때부터 난민을 받기 시작해, 지난 70년간 약 90만명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난민위원회는 호주 전역의 난민 구호·지원 민간단체들과 연방정부를 이어주고 관련 정책을 제시하는 비정부 협의 조직이다. 호주 연방정부가 정한 이번 회계년도(2018년 7월~2019년 6월)의 정착 난민 수용 규모는 1만7000명 수준이다. 이런 수치는 전세계 난민 수용국 순위에선 상위권이 아니지만, 주요 선진국 중에선 독일·미국·캐나다·프랑스에 이어 5위권이다. 반면, 한국은 1994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뒤 지난 4월까지 25년간 받아들인 난민 총계는 954명에 불과하다. 난민 인정률이 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꼴찌에서 2~3위를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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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UNHCR)가 집계한 2017~18년 전세계 난민 수용 및 재정착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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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UNHCR)가 집계한 2017~18년 주요 선진국의 난민 수용 및 재정착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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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난민 정책의 특징은 연방 정부가 연간 수용 규모를 정해놓고 난민이 대량 발생하는 분쟁 지역에 정부 관리를 파견해 대상을 물색한 뒤 엄격한 난민 인정 심사를 거쳐 데려온다는 점이다. 대개는 난민 수용국이 난민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국제난민협약과 국내 관련 법규에 따라 난민 지위를 심사해 받아들이는 일반적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호주의 난민 정책이 비판을 받는 대부분의 이유도 이같은 사전 선별 심사 방식에서 비롯한다.
■ ‘오프 쇼어’에 드리운 그림자
앞서 2013년 자유당의 토니 애벗 총리 시절 이민·국경보호부 장관이었던 스콧 모리슨 현 총리는 난민 신청자들을 호주 땅에 들이지 않는 ‘역외 심사(오프 쇼어, Off-shore)’ 원칙을 도입하며 강력한 이민 억제와 난민 통제 정책을 펴왔다. 이런 ‘역외 심사’ 정책은 배를 타고 탈출한 절박한 처지의 난민들에겐 원천봉쇄나 다름 없다.
호주 정부는 이른바 ‘보트 피플’의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이들을 인근 섬나라인 파푸아뉴기니의 마누스섬과 멀리 떨어진 적도의 섬나라 나우루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현지의 난민 캠프에 격리한다. 이들 중 일부는 빈곤국 방글라데시에 돈을 주며 재정착시키기도 한다. 지난달 현재 호주의 역외 난민은 마누스에 531명, 나우루에 350명 등 모두 881명이 수용돼 있다. 역외 난민 캠프는 시설과 환경이 매우 열악한데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까지 빈발해 인권 유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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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태평양 섬나라 나우루에 있는 호주의 역외 난민캠프에 수용된 캄보디아 난민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호주 정부에게 난민 인권 보장과 본국 송환 반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난민이다”, “난민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을 멈춰라”, “차라리 내 목숨을 가져가고 아이들 학대를 멈춰라” 등의 구호가 처연하다. 호주 인권단체 난민행동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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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 효력을 지닌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은 ‘난민’의 개념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인정되고 ”국적국 밖에 있으면서 종전의 상주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 공포로 인하여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로 정의한다. 이런 상황을 주장하는 이들이 난민협약 가입국의 영토에 발을 들이고 난민 신청을 하면, 해당국은 그 주장의 신빙성을 심사해 난민 지위 여부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호주처럼 정부가 먼저 나서 난민을 현장에서 심사해 데려오는 방식은 얼핏 매우 적극적 태도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망명 희망자들이 애초에 난민 지위를 신청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다수 난민은 수용국 또는 망명 희망국의 비자를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입국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를 피하려, 이전까지 누리던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터를 등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17일 멜버른에서 만난 호주 이민 정책 전문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버튼 기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주는 시리아, 이라크처럼 내전을 피해 오는 난민을 받았다. 대다수 국민이 무슬림인 국가들이다. 그런데 호주 정부가 받아들인 난민의 대다수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도가 호주의 주류사회와 잘 통합되고, 무슬림보다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봐서다.” 버튼은 “연방정부가 안보 위협을 우려해 안전한 쪽을 선택했지만,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비차별적 이민 정책’과는 대치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너무 뜨거운 감자
‘오프 쇼어’ 정책은 정확한 규모조차 확인하기 힘든 천문학적 비용도 문제다. 호주난민위원회가 연방정부의 예산 집행을 토대로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13~2018 회계년도에만 49억 호주달러(약 40조원)가 들었다. 여기에는 난민들의 장기 구금에 따른 정신적·신체적 손상, 폭력·범죄·착취, 성폭행, 어린이·청소년의 교육 기회 상실 같은 ‘인간 비용’, 호주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판 훼손과 영향력 저하, 우방국들과의 관계 악화 등 ‘전략적 비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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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호주난민위원회(RCOA)의 폴 파워 대표는 “난민이 누구인지, 호주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드니/한-호주 언론교류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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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파워 호주난민위원회 대표는 “이번 연방 총선은 각 정당들이 난민 문제에 대해 가장 말을 아낀 선거였다”고 말했다. 정치적 올바름, 인도주의적 책무, 유권자들의 상반된 목소리 등을 모두 신경써야 하는 정치인들로선 선뜻 정책공약을 공언하기 힘들 만큼 ‘뜨거운 감자’라는 이야기다. 파워 대표는 “이전에는 정치인들이 난민 문제를 언급할 때 사회기반시설 부족, 교통정체, 테러 등 사회 문제를 난민에게 덮어씌우고 대중의 반이민 반이슬람 정서에 편승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더디지만 분명한 변화 조짐
그러나 호주의 인구 구성이 급변하고 난민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면서, 난민 수용에 대한 호주 국민의 지지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 초 호주 정치권이 역외 난민 중 치료가 시급한 병약자들을 본토에 받아들이는 ‘난민 국내이송 치료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중증 환자의 본토 이송은 그 이전부터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일부나마 실행해온 조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의 압력으로 아예 공식화했다. 지난달까지 그렇게 이송된 난민은 모두 972명으로, 이미 역외 난민 수용자 수를 넘어섰다.
폴 파워 난민위원회 대표는 “몇년 전까지만도 연방정부의 ‘오프 쇼어’ 정책에 대한 찬성율이 70%가 넘었는데 지금은 50% 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국민의 40% 이상은 현재 호주가 난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세계에 비치는 모습에 대해 부끄러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구금시설(난민 캠프)에 체류 중인 망명 신청자의 75~80%가 진짜 난민으로 판명돼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며 이는 “난민을 보호할 현실적 필요성과 난민에 대한 정치적 태도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시드니·멜버른/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취재 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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