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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7 14:59 수정 : 2019.03.17 20:26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 두 곳에서 50명의 목슴을 앗아간 총기 테러가 난 다음날인 16일, 사건 현장 인근의 추모 꽃무덤에 놓인 카드에 “당신들은 내 친구입니다. 당신들이 기도하는 동안 우리가 지켜드릴게요”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크라이스트처치/AP 연합뉴스

70대 노인 이주자, 몸으로 총탄 막다 희생
범인에 물건 던지고 빈총 쏘며 맞선 40대
시리아·아프간·소말리아·이라크 난민들 다수
항공기 정비사·엔지니어·교수 등 전문직도
“다양성·조화 파괴하려는 극단주의가 문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 두 곳에서 50명의 목슴을 앗아간 총기 테러가 난 다음날인 16일, 사건 현장 인근의 추모 꽃무덤에 놓인 카드에 “당신들은 내 친구입니다. 당신들이 기도하는 동안 우리가 지켜드릴게요”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크라이스트처치/AP 연합뉴스
시리아 난민과 10대 자녀들, 파키스탄 출신 학자, 일자리를 찾아온 청년, 꽃처럼 피어나던 학생들 ….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 두곳에서 이민자 혐오에 사로잡힌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브렌턴 태런트(28)의 총기 테러로 숨진 50명의 희생자들 중에는 종교·정치·경제적 이유 등으로 고국을 등지고 새 삶터를 찾은 난민과 이주자들이 많았다. 참극의 현장에 있던 무슬림 시민 일부는 총탄이 쏟아지자 자기 몸으로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려다 목숨을 잃는 용기와 인간애를 보여줘 안타까움을 더했다.

<뉴질랜드 헤럴드> 등 현지 언론 등은 16일 경찰의 신원 확인 과정에서 밝혀진 희생자들의 사연과 급박했던 현장 이야기들을 전했다.

197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다우드 나비(71)는 알누르 모스크에서 예배 중 느닷없는 총성이 울리자 몸을 피하는 대신 온몸으로 총탄을 막아섰다. 그의 아들 오마르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아버지가 총탄이 쏟아지는 쪽으로 뛰어들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숨졌다”고 말했다.

네 아들과 함께 예배 중이던 압둘 아지즈(48)는 마침 사원에 있던 신용카드 단말기를 집어들어 테러범에 던진 뒤 그가 버린 총을 주워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이미 총알을 다 써버린 빈 총이었다. 그는 탄약을 가지러 가던 범인을 뒤쫓아가며 빈 총을 던졌고, 범인은 차를 몰고 도주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17일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시민이 지난 15일 총기 테러가 발생한 남섬 크라이스트처지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무덤에 꽃을 놓고 있다. 오클랜드/AFP 연합뉴스
희생자 대다수는 새로 정착한 뉴질랜드를 ‘제2의 조국’으로 여기며 살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시리아 난민인 칼레드 무스타파는 지난해 아내, 세 자녀와 함께 뉴질랜드에 정착했다. 그는 두 아들과 금요예배에 참석했다가 참변을 당했다. 현지 시리아 난민단체는 칼레드와 큰아들이 숨지고 작은 아들은 크게 다쳤다고 전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작은 아들과 집에 있던 막내 딸은 아버지와 오빠가 숨진 사실을 듣지 못했다.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아단 이브라임 디리에는 어린 다섯 자녀와 함께 모스크에 갔다가 총탄이 쏟아지자 황급히 아이들을 챙겨 빠져나왔지만 네 살 막내는 숨지고 자신도 총상을 입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한 모스크 성직자인 디리에의 삼촌은 <뉴질랜드 헤럴드>에 “나의 상심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며 “극단주의가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사는 무슬림들이 극단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파리드 아메드는 아내(45)와 함께 모스크에 갔다가 혐오의 총탄에 아내를 잃었다. 그는 “어떤 사람은 뉴질랜드의 다양성과 조화를 일부러 파괴하려 한다”며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희생자들 중에는 전문직 인력도 상당수 있었다. 뉴질랜드항공 정비사인 리리크 압둘 하미드는 아내와 두 자녀를 남겨둔 채 알누르 모스크에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뉴질랜드항공 최고경영자인 크리스토퍼 룩손은 성명을 내어 “리리크는 16년 동안 우리의 유능한 팀원이었다”며 “그는 앞서 해외의 다른 직장에서 일하다 친화력을 인정받아 크라이스트처지의 뉴질랜드항공으로 옮겨왔다. 팀에서 그의 빈자리가 매우 클 것”이라고 애도했다.

파키스탄 출신의 나임 라시드도 스물한 살 아들과 함께 예배 중 흉탄에 맞아 숨졌다. 그는 7년 전 탈레반의 폭압을 피해 뉴질랜드로 건너와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며, 아들은 대학생이었다.

이라크전쟁을 피해 온 아디브 사미(52)는 20대의 두 아들과 총탄이 쏟아지자 재빨리 아들들을 자기 몸으로 덮쳤다. 딸 해바는 <걸프 뉴스>에 “아버지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오빠들을 살리려다 자신은 척추 부근에 총을 맞았지만 덕분에 오빠들은 무사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사미는 탄환 제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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