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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1 16:09 수정 : 2018.11.02 11:40

퇴임 2개월 앞 대법원장, 민감한 사건 선고 강행
신성모독 이유 교수형 선고 기독교도 9년 만에 무죄

2011년 피고인 옹호하다 주지사·장관 암살돼
이슬람 강경파, 피고인·대법관 처형 요구 시위

31일 아시아 비비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선고 직후 이를 비난하는 이들이 카라치에서 타이어에 불을 붙여 도로를 막은 채 시위를 하고 있다. 카라치/AFP 연합뉴스
아시아 비비(47)는 2009년 6월 동네 여자들과 과일을 따러 가면서 곧 닥칠 불행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키스탄 펀자브주 주도 라호르 근처의 시골 사람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리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시아 비비.
갈증이 발단이었다. 비비가 떠온 물을 마시려던 일행이 투덜댔다. 이교도(기독교도)가 쓴 컵은 더러워 못 쓰겠다고 했다. 그러니 개종하라는 말까지 했다. 집으로 쳐들어온 동네 사람들이 폭행을 가하면서 ‘아까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욕하지 않았냐’며 이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비비는 신성모독을 인정했다. 2010년 1심에 이어 2014년 항소심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여론 재판’에서는 이미 신성모독죄로 최초로 사형이 확정된 파키스탄 여성이 됐다. 남편과 네 자녀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

사키브 니사르 대법원장.
2018년 10월31일, 파키스탄 대법원은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비비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을 명령했다. 그가 신성모독을 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없애는 데 검찰이 “명확히 실패했다”고 했다. ‘자백’은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왔고, 수사기관이 그에게 유리한 증인은 배척했다는 점도 거론했다. 나아가 신성모독죄가 재판 없는 처형의 근거로 남용되면서 1990년 이래 62명이 살해당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법원칙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보이지만, 재판부로서는 목숨을 건 결정이다. 내년 1월 퇴임하는 사키브 니사르 대법원장이 ‘뜨거운 감자’를 후임자에게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그는 선고를 강행했다. 그는 직접 쓴 판결문의 마지막에 ‘비무슬림을 친절히 대하라’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록 문구를 넣어 종교적 관용도 강조했다.

강경 이슬람 정당 지지자들이 31일 라호르에서 대법원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라호르/EPA 연합뉴스
이 사건이 얼마나 민감한지는 비비를 옹호한 고위 인사 2명이 ‘심판’을 받은 데서 잘 드러난다. 2011년 펀자브 주지사가 비비를 면회하고 그에게 동정을 표했다가 자신의 경호원한테 살해당했다. 몇달 뒤 파키스탄 정부의 소수자 담당 장관도 비슷한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외신들은 판결 직후 수도 이슬라마바드, 카라치, 라호르, 페샤와르에서 성난 군중이 비비의 공개 처형은 물론 대법관들의 처형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다고 전했다. 일부는 고속도로를 막고 경찰과 충돌했다. 사형당한 펀자브 주지사의 경호원을 성인으로 받드는 이들은 대법원이 복수의 기회를 앗아갔다고 성토했다. 임란 칸 총리는 강경 이슬람 정당이 주도하는 시위에 대해 “정부가 행동에 나서게 만들지 말라”며 텔레비전 연설로 경고했다.

비비는 감옥에서 전화로 연결된 <아에프페>(AFP) 통신 기자에게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풀어주는 거냐”고 말했다. 그는 풀려나도 목숨을 지키려면 망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관들도 위험한 상황이라 특수부대가 경호에 나섰다. 특히 차기 대법원장 아시프 코사가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펀자브 주지사 경호원의 사형 판결을 확정해 이미 원한을 샀기 때문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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