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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9 14:09 수정 : 2005.12.09 14:09

“미얀마에 가서 소원 성취하겠구만.”

평소에 대책없이 놀기 좋아하는 나를 두고 직장 동료들이 한 말이다. 휴직을 통해 재충전을 하는 것이니 이는 안식년이라고 부르는 거라며 점잖게 응수했지만 속된 말로 지금 나는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할 일들이 있지만 어떻든 시간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부족한 영어로도 볼 수 있는 무엇이 없을까를 찾게 된다.

재미도 있으면서 지식과 교양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단연 퀴즈 프로그램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도 시청 가능한 국내의 Arirang TV에는 7주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은 퀴즈 프로그램이 있다. 연속 우승이 쌓여 갈 때마다 상품을 점점 더 큰 것으로 하여 당사자는 물론 관객 역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된다. 가끔 7주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박식함에 감탄하게도 된다.

미얀마인들은 대체로 세계와 단절되어 나라밖 소식을 잘 모르고 교육의 부실로 배경지식이 부족한 편이다. 그들에게 Arirang TV의 퀴즈프로그램들은 매우 인기가 높다. 한국인들은 어떻게 그리 아는 것이 많으냐며 나조차 지식인 대접을 받을 때 나는 으쓱한다. 그러다가 대뜸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사람은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왜 그런가는 각자가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텔레비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곳에서 한국의 방송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신나는 일이다. 세계최빈국 중 하나인 이곳에서 아리랑과 YTN을 지켜보면서 새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이만큼 높아졌구나 뿌듯한 것이다. 다만 뉴스를 통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핵폭탄적 내용이라든가 국제적 수준의 끔찍한 범죄 같은 소식을 접할 때는 속상하기 그지없다. 내가 있는 아파트에서는 한 나라 한 개 채널의 원칙을 따라 아리랑 채널만을 볼 수 있지만 아파트에 따라 두 방송을 다 볼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양곤 역시 분명 개방의 거센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미얀마 방송은 두 개가 시청 가능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황금 시간대에는 한국의 드라마가 방영된다. ‘가을 동화’가 재작년(2002) 말 경 선풍적 인기리에 방영된 이후 한국 드라마는 여전히 높은 인기 속에 방영되고 있는 것이다. 길거리에 나가면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한국어로 인사를 해오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한국에 대한 소박한 관심과 애정에 우리가 답할 방법이 뭐가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작년 12월은 한국의 달이 아닌가 싶을 만큼 한국대사관을 중심으로 많은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그 중 작년에 처음 기획되어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낸 것만 얘기하더라도 ‘한국어 말하기 대회’와 ‘한국 상품 전시회’를 들 수 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 대상 수상자는 열심히 공부하여 한국 대사가 되어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혀 만원을 이룬 관객들의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받았다. 그녀는 지금 그 수상의 대가로 꿈의 나라 한국에 가서 연수 중이다. 그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리라.

개인적으로 미얀마인들의 한국 사랑에 대한 조그만 갚음이라 여겨져 흐뭇했던 이 행사는 우선 현지인들이 자기들도 놀랄 만큼 열렬히 호응하고 즐거워하여 좋았다. 이렇게 흥겹고 신나는 문화 마당 자체가 없는 것이다. 우리 봉사단원 선생님들의 지도로 사이사이 소개된 양곤외국어대 학생들이 준비한 부채춤과 한국 노래, 역시 한국 봉사단 사범이 지도한 태권도 시범, 만달레이외국어대 학생들의 전통 촛불춤 등의 공연 역시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행사를 직접 맡아 주관한 KOICA는 각종 지원 프로젝트와 더불어 2003년 현재 13명의 봉사단을 이 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다. 봉사단이 활동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금액을 지원하고 있지만 봉사단이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그들의 심금을 울리는 나라는 미얀마에 한국뿐이라는 감동적인 사실. 이것도 그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깊은 관심에 대한 갚음의 일종이라고 생각된다.

KOTRA에서 주관하고 행사 기간 내내 인파가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찼던 ‘한국 상품 전시회’는 바로 이 나라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반영해 주었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 행사에 애초에 ‘가을동화’의 출연진들 중 하나를 초대하려 했었다고 귀뜸했다. 그러나 섭외 결과 금액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나서 계획을 바꾸어 당시 미얀마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고 있던 한국 드라마 출연자 중 하나와 접촉했다. 하지만 그 역시 상상을 넘는 금액을 요구했고 더욱이 몇 명의 스태프의 체재비용까지 요구했단다. 그 연예인의 경우 미얀마에서 그다지 인기도 없고 돈을 그만큼 쓰고 데려올 형편도 아니어서 계획은 취소되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왔더라면 단지 한국 연예인이라는 점만으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왔을 것이 틀림없다. 그랬더라면 막 불붙기 시작한 한국에 대한 열렬한 관심에 말 그대로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한국과 미얀마의 더욱 친밀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래서 바로 이 시점에서 아쉬운 것이 연예인들의 대승적 차원의 의식이다. 미얀마에도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늦기는 했지만 한류 열풍이 강하게 불어닥친 것이다. 이런 열풍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법이 없다. 바람이 불었을 때 그 바람을 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자본의 잣대로만 잴 일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누군가는 돈에 연연하지 말고 다녀갔어야 한다. 행사 기간 중에 한국의 한 가전업체가 경품으로 냉장고 한 대를 내놓았는데 그것에 호응하여 1층 전면에 마련된 무대 앞을 질서 정연하게 가득 채운 상태에서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그들 군중을 보며 눈물이 날 만큼 찡한 마음이었다. 그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와서 그것을 추첨하고 전달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감격했을까.

한류 바람을 타고 영화 ‘쉬리’를 들여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담당자가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바람에 조건이 맞지 않아 수입이 안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세계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받은 가격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미얀마에 수출한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보면 우리 측의 전략적이고 탄력적인 사고가 더욱 아쉽다.

물론 메뚜기 한철이라고 소위 잘 나갈 때 돈을 벌어야 하는 한국 연예인들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한국 연예인이 외국에서 많은 개런티를 받거나 국산 영화가 비싼 금액에 팔리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하지만 나와서 보니 국제 연예계의 사업, 영어로 이른바 비지니스는 무조건 자본의 논리로만 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아진다. 국익 차원에서 그것을 인식하는 당사자와 업계의 지혜가 정말 요청된다. 연예인의 경우 본인이 잘 모른다면 매니저나 관련자 등 옆의 누구라도 일깨워줄 일이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했다면 어찌되었건 지식이 많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당연하게도 최고의 지식인으로 대접받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거나 최고의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이 그 나라 최고의 배우이거나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최고의 인격을 지닌 인간은 아니다. 돈의 액수에 현혹되어 자칫 그 비슷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으나 그렇게 된다면 본인도 불행이고 팬도 불행이다. 아울러 나라에도 조금 손해가 된다.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에서 누리는 그의 인기도에 걸맞는 봉사 정신과 의식을 지녔으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해서 미얀마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는 노 개런티로 와서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이 나라 사람들의 무조건적 순정에 응해주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성숙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에게는 눈물 나는 미얀마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좋고 더불어 국익에도 보람되는 그런 일을 해줄 정말 아름다운 연예인을 보고 싶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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