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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 감독이 27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브카시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베트남과 시리아의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자와바랏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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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느낌’ ‘모래시계’ ‘대장금’ 등 큰 인기
2010년 전후엔 슈퍼주니어·빅뱅 등 큰 사랑 받아
박 감독, 작년 말 부임…처음엔 ‘슬리핑 원’ 조롱 받아
AFC 결승·아시안게임 준결승 진출에 ‘국민 영웅’ 대접
현대차·신한은행 등 현지 진출 기업들 덩달아 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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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 감독이 27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브카시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베트남과 시리아의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자와바랏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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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내 한류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23살 이하 아시아선수권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진출 과정에서 보여준 ‘박항서 매직’으로 제2의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다. 거리 응원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시민들과 상점에 적힌 한국어 글씨들은 한류 열풍의 열기를 보여준다. 관광객들 사이에 한국 사람이면 숙박비, 제품, 밥값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경험담까지 나온다.
베트남전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지만, 베트남 사회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한류 바람을 강하게 타고 있다. 외교부가 2014년에 1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한국 이미지 조사’ 결과에서, 베트남(5점 만점에 3.41점)은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진 나라 2위(1위는 인도·3.48점)를 차지했다. 한국관광공사가 2017년 발표한 ‘관광 홍보 효과 조사’ 결과, 베트남이 한국 관광에 대한 가장 높은 선호도를 가진 나라였다. 2007년
6만명 수준이던 베트남의 방한 관광객 수가 2016년에는 25만명으로 네 배 이상 급증했다. 베트남에 분 한류 바람의 덕이 크다.
■ 2000년대 드라마·K-POP이 이끈 한류 열풍
베트남 한류의 시작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간다. 베트남은 1986년 시작한 도이모이(Doi Moi·개혁 변화) 정책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질 좋은 문화 콘텐츠에 대한 욕구가 증가했지만, 베트남 방송국들은 시민들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를 생산하기 어려웠다. 방송국들은 해외 콘텐츠에 눈을 돌렸다. 1998년 한국드라마 <느낌>, <첫사랑>을 시작으로 <별은 내 가슴에>, <모래시계>, <겨울연가>, <대장금> 등이 베트남 티브이에 방송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때가 베트남에 본격적인 한류 열풍이 시작된 시점이다.
당시 베트남 언론들은 “한국드라마가 베트남 티브이를 지배했다”고 평가했다. 한국드라마 열풍의 이유에 대해서는 “중국과 미국보다 한국드라마에 등장한 주인공들의 정서가 베트남인들과 더 유사하고, 권선징악·도덕성을 강조하는 스토리가 더 큰 공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드라마의 베트남 티브이 점유율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2015년 7월 발표한 시장 분석 보고서를 보면, 인터넷에서 무료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도래하면서 한국드라마 수입량이 감소했다. 또 당시 인도, 태국, 필리핀 드라마들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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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 케이팝 한류 열풍이 뜨겁다. 슈퍼주니어가 일본 도쿄돔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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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들해진 한류 열풍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케이팝(K-POP)이다. 베트남 젊은이들은 2010년 전후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 가수들의 무대를 접했다. 슈퍼주니어, 비,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베트남
언론들은 2011년 5월 호치민에서 열린 슈퍼주니어 콘서트를 “베트남 전체를 매료시킨 역대급 공연”이라고 칭했다. 고다우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9000여명의 관객들이 멤버들의 한글 이름이 적힌 피켓을 흔들며 한국어로 히트곡을 ‘떼창’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후에도 한국 예능, 연예인들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베트남에서 한류 열풍이 이어졌다.
■ 박항서… 조롱받던 ‘슬리핑 원’에서 ‘국민 영웅’으로
‘박항서 매직’은 이런 한류 열풍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다.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던 베트남을 국제대회에서 두 번이나 4강 이상에 올려놓은 그의 마법에 베트남 국민들이 열광했다. 티브이에선 그가 나오는 광고와 방송이 끊이지 않았고, 거리 곳곳과 차량에까지 그의 사진이 붙어있어 ‘박항서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는 베트남에서 환영받는 감독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무명의 지도자’라는 비판이 거셌다. 당시 베트남 축구팬들은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육성한 ‘황금 세대’를 유럽 출신 유명 감독이 맡아주길 바라는 여론이 컸다. 이에 비해 박 감독은 한국 국가대표 감독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당시에도 한국 내셔널리그(3부리그) 창원시청 감독을 맡고 있었다. 유력 일간지 <뚜오이쩨> 등은 박 감독을 ‘슬리핑 원’(잠자는 사람)이라고 조롱했지만, 베트남 축구협회는 박 감독 카드를 밀어붙였다. 박 감독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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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정의석 단장(왼쪽)이 2015년 12월 베트남 호치민의 렉스호텔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인천 유니폼을 입은 르엉 쑤언 쯔엉(오른쪽)과 유니폼을 들고 있다. 인천유나이티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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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감독 선임 배경에 대해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박 감독 선임 이전에 베트남 체육계가 한국 지도자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의 박충건(52) 감독은 사격대표팀을 이끌고 베트남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한국에서 국가대표 후보팀 감독 등을 지낸 박 감독은 2014년에 베트남으로 건너가 베트남팀을 지도했다. 인자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꼼꼼히 챙기면서도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는 박 감독의 자세와 능력에 호평이 쏟아졌다. 베트남 선수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해 박 감독을 잘 따른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국 축구는 베트남 국민의 동경 대상이기도 했다. 르엉 쑤언 쯔엉(23)의 한국 프로축구리그 진출 소식이 전해진 2015년 말 현지 언론들은 ‘베트남 축구 스타’의 케이(K)리그 클래식(1부리그) 진출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베트남 국영 온라인 매체인 <브이엔(VN) 익스프레스> 보도를 보면, 2015년 12월 베트남에서 열린 쯔엉의 인천유나이티드 입단식에 베트남 축구협회장 겸 수출입은행장, 도지사 등 축구계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40여개 현지 매체가 쯔엉의 입단식에 몰리는 등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쯔엉은 “아시아 최고 리그에서 뛰는 상황이 설렌다. 한국 리그에 잘 적응해 (베트남) 축구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 축구 팬들은 한국 팬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진출한 박지성을 응원하듯 쯔엉을 응원했다. 하지만 쯔엉은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2년의 임대 기간 인천유나이티드에서 4경기, 강원FC에서 2경기 출전해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고 2018년 초 베트남 리그로 유턴했다. 하지만 쯔엉으로 인해 베트남 축구 팬들의
케이리그에 관심이 커졌고, 박항서와 쯔엉은 23살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과 주장으로 다시 만났다.
박항서 감독은 한국드라마, 케이팝, 한국 스포츠 지도자의 선전 등이 이끈 한류 열풍 속에 감독에 부임해 3개월 만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지난 1월 베트남을 사상 최초로 아시아축구연맹(AFC) 23살 이하 선수권대회 결승으로 이끌고,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준결승에 진출시켰다. ‘슬리핑 원’이란 조롱을 넘어 ‘국민 영웅’에 등극했다. 베트남 노동신문 <라오동>은 준결승 진출 직후 ‘생큐 박항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박 감독이 축구로 베트남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고 평가했다.
■ ‘박항서 매직’으로 제2의 한류… 한국 기업에도 호재
박항서 감독이 이끈 ‘제2의 한류 열풍’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신이 났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외국계 은행 중 1위 자리를 차지했고, 현대자동차도 올해 상반기 베트남에서 2만7000여대의 차량을 판매하는 등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한국과의 더 긴밀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어 당분간 한류 분위기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 한류 열풍을 유지하기 위해 베트남전 전쟁범죄 문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대우 문제 등으로 생긴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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