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08 16:35
수정 : 2018.08.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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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속후아 캄보디아 구국당(CNRP) 부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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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속후아 캄보디아 구국당 부대표 인터뷰
독재 정권 공고화·권력 세습 현실 지적하며
국제사회 도움 호소…“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영감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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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속후아 캄보디아 구국당(CNRP) 부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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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주는 쉽게 씻어낼 수 있는 과거가 아닙니다. 그 공포 정치의 유산이 지금도 캄보디아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1993년 첫 민주주의 선거를 치른 우리가 지난 25년간 싸워야 했던 이유입니다.”
지난달 29일 치러진 캄보디아 총선의 공식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훈센(66)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CPP)이 하원 125석 전체를 가져간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이는 훈센 총리의 임기가 최소 2023년까지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는 1985년 이후 38년간 권좌에 앉으며 세계 최장수 지도자 자리를 넘보게 됐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의원내각제 아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국제 사회는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강력히 반발했지만, 훈센 총리는 아랑곳 않고 독재체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캄보디아 제1야당이던 캄보디아 구국당(CNRP) 무 속후아 부대표(64)가 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한겨레>와 만나 공정하고, 자유로운 재선거를 치르기 위해 국제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무 속후아 부대표는 지난해 10월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짐가방 하나만 챙겨 인근 국가로 피신했고, 그 길로 스위스 제네바, 노르웨이 오슬로, 일본 도쿄 등을 돌며 캄보디아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9일 국제민주연대, 아시아 민주주의네트워크, 참여연대가 주최하는 ‘캄보디아 총선과 민주주의의 위기’ 간담회에 참석해 암울한 캄보디아의 현실을 전한다.
1975년 공산혁명을 통해 수립된 크메르 루주 정권은 반대파 시민 200만명 이상을 숙청하는 ‘킬링필드’ 사건을 자행했다. 훈센 총리는 당시 크메르 루주 정권에서 지휘관으로 일했다가 전향해 베트남으로 망명했다. 크메르 루주를 몰아냈고, 자신을 ‘구원자’의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각인시켰다.
지금, 캄보디아에서 벌어지는 독재 정권 공고화 작업은 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훈센 총리는 지난달 30일 권력을 세습할 요량으로 맏아들 훈마네트(40)를 군 요직으로 꼽히는 대테러기구 수장 자리에 배치하기까지 했다. 군인 3000명이 소속된 이 기구는 사실상 훈센 총리를 지키는 ‘무사’ 역할을 한다. 훈센 총리가 자신의 안위를 얼마나 불안하게 여기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캄보디아 구국당은 2013년 선거에서 이례적인 지지율(45%)을 기록하며 제1야당이 된 뒤, 정부의 견제와 핍박을 받아왔다. 훈센 총리는 당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젊은층 유권자들이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목소리를 표출하자, 올해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전략적으로 분열 공작을 폈다. 정치 참여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와 인권단체를 해체시켰고, <프놈펜 포스트>와 <캄보디아 데일리> 등 언론사에 재갈을 물렸다. 다음 화살은 제1야당인 구국당으로 향했다. 외부 세력과 결탁해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켐 소카 대표를 구속했고, 지난해 11월엔 정당을 해산했다. 무 속후아 부대표는 “어용 야당 19곳을 세워 겉보기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것처럼 포장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경쟁 없는 총선의 승리는 짜인 각본대로 진행된 결과였다. 공포심을 자극해 온 훈센 정부의 움직임 때문에 반정부 운동의 속도는 더뎌졌고, 결속력도 떨어졌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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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속후아 캄보디아 구국당(CNRP) 부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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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현지에선 손가락에 잉크를 묻히지 말자는, 투표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다. 정부는 투표율이 82%를 넘었다고 주장하지만, 40%도 안 됐을 거라고 추정한다”며 “투표하지 않는 시민에 대한 탄압 또한 매우 거셌다. 투표하지 않은 교사는 직장을 잃었고, 손가락에 잉크가 묻지 않은 카페는 문을 닫게 했다”고 우려했다. 전체 830만표 중 무효표가 60만표나 되는 것은, 투표소에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던 시민들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었다. 정부가 선거인 명부 등록 자체를 어렵게 했고, 반정부 유권자를 검열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는다.
캄보디아 시민들의 진정한 민주화를 향한 염원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달 28~29일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캄보디아 민주화공동체는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전국에서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과 노동자 5천여명이 참석했다. 무 속후아 부대표는 “광주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면서 “5·18 민주화운동은 공포 속에서 살지 말고, 연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며, 국가 발전 과정에서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줬다. 아시아에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가 많다. 국제 사회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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