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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2 09:56 수정 : 2018.06.04 14:38

5월26일 전국휴전협정(NCA)에 서명한 버마 소수민족 무장세력 대표단이 치엥마이에서 평화진행조정회의를 하고 있다. 가운데 연설하는 이가 무뚜 새 뽀 장군(까렌민족연합 의장). 왼쪽에 앉은 이가 욧석 장군(샨주복구회의 의장). 왼쪽 테이블 첫 번째 검은 머리가 탄케(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정문태

[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17) 타이 치엥마이

5월26일 전국휴전협정(NCA)에 서명한 버마 소수민족 무장세력 대표단이 치엥마이에서 평화진행조정회의를 하고 있다. 가운데 연설하는 이가 무뚜 새 뽀 장군(까렌민족연합 의장). 왼쪽에 앉은 이가 욧석 장군(샨주복구회의 의장). 왼쪽 테이블 첫 번째 검은 머리가 탄케(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정문태

국경이 도시로 내려왔다. 흔치는 않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5월25일 아침나절, 기사를 마감하고 느긋하게 커피숍에 앉았다. 전화가 울린다. “형, 잘 지내지?” “응, 연락 좀하고 사세.” “미안. 어제 랭군에서 돌아왔어.” “지금 어디?” “치엥마이. 형은?” “난 매솟. 오후에 까렌 국경 넘으려고. 근데, 왜 치엥마이?” “내일부터 전국휴전협정(NCA) 회의가 있어.” “그러면 미리 좀 알려주지.” “우리도 그저께 랭군에서 급히 결정한 일인데다 언론에 알리지 말자고들 해서.” “무장단체 지도자들 다 모이는 거지?” “응.” “그래서 꿰투윈(까렌민족연합 KNU 부의장) 연락이 안 되었구먼.” “방금 통화했는데 매솟공항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탄케와 통화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까렌민족해방군(KNLA) 제5여단으로 들어갈 계획을 접고 부랴부랴 치엥마이로 되돌아간다.

치엥마이서 열린 버마 휴전협정 회의

5월26일 아침 9시, 치엥마이 한복판 쿤푸캄호텔에 전국휴전협정 조정위원들이 둘러앉았다. 이 전국휴전협정이란 건 버마 내전 종식을 내걸고 2011년부터 떼인세인 대통령 정부가 소수민족무장조직(EAOs)과 맺은 개별 휴전을 2015년 공동 휴전으로 명문화한 상위 협정을 일컫는다. 까렌민족연합, 빠오민족해방군(PNLA), 샨주복구회의(RCSS·샨주남부군의 정치조직), 아라깐해방당(ALP), 친민족전선(CNF), 민주까렌불교군-5(DKBA-5), 까렌민족연합·까렌민족해방군 평화회의(KNU·KNLA-PC)를 비롯한 7개 소수민족 무장조직과 유일한 무장민주혁명 세력인 버마학생민주전선이 그 협정에 서명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신몬주당(NMSP)과 라후민주연합(LDU)이 서명하면서 현재 전국휴전협정 그룹은 10개로 늘어났다.

말하자면 아직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까레니군(KA) 하나를 빼고 버마-타이 국경 1800㎞를 낀 버마 내 모든 소수민족 무장조직이 이날 치엥마이로 옮겨온 셈이다. 이들 가운데 본디 버마-방글라데시 국경이 발판인 아라깐해방당은 독자적 해방구가 없어 까렌민족해방군 지역에 더부살이 해온 경우다.

이쯤에서 한 해 1천만 관광객이 몰려드는 치엥마이 속살을 한번 들여다보자. 옛날부터 사람들은 버마까지 100㎞나 떨어진 치엥마이를 국경도시처럼 여겨왔다. 치엥마이주가 버마와 국경을 맞댔으니 틀린 건 아닌데 지리적으로 따지면 좀 먼 느낌이 든다. 이건 국경이 흔히들 생각하는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경계선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세상 곳곳에는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경제적 국경에다 심리적 국경까지 온갖 국경선이 뻗어있다. 치엥마이도 그런 개념적 국경 가운데 하나로 볼만하다.

타이 북부를 중심으로 버마의 샨주 남부와 라오스 서부에 터를 다진 중세 란나왕국(1296~1768년) 수도였던 치엥마이는 19세기 들어 치엥마이왕국(1802~1899년)을 계승했다. 그 사이 1774년부터 1899년까지 사이암왕국(타이)에 조공을 바치던 치엥마이는 결국 1939년 타이왕국의 한 주로 편입 당했다. 이렇듯 한때 독립국이었던 치엥마이왕국과 타이왕국을 가르는 역사적 잔상이 오늘까지 이어지면서 치엥마이에 국경을 입힌 게 아닌가 싶다. 아직도 치엥마이 토박이들한테 남아있는 잃어버린 왕국을 향한 잔잔한 슬픔을 떠올려 볼만하다. 감상적 국경인 셈이다.

현대사로 넘어오면 치엥마이는 좀 두터운 정치적 국경을 걸치게 된다. 버마, 중국, 라오스 국경과 통하는 치엥마이는 냉전 기간 내내 인도차이나반도의 비밀 반공 방파제 노릇을 했다. 그 시절 치엥마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소비에트, 중국이 파견한 온갖 정보원들이 날뛰면서 ‘스파이 도시’로 이름 날렸다. 관광객조차 없던 1950년 미국이 국경 변방 치엥마이에 영사관을 연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 1950년부터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중국 인민해방군에 쫓겨 버마 국경을 넘은 장제스의 국민당 잔당을 인도차이나 반공용병으로 부리면서 치엥마이를 발판 삼았다. 중앙정보국은 버마 국경에서 국민당 잔당이 생산한 아편을 자신들이 비밀스레 운영한 에어아메리카(Air America)로 치엥마이를 거쳐 방콕까지 실어주면서 전쟁비용를 대신했다. 그 시절 ‘큰 아편’으로 불렸던 국민당 잔당 제3군 사령관 리원환도, ‘아편왕’이란 별명을 달고 국제마약시장을 주름잡았던 쿤사도 모두 치엥마이에 비밀금고를 꾸렸다. 그렇게 국제반공전선과 국제마약시장 심장 노릇을 한 치엥마이는 199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시들해졌지만, 그 돈줄들은 요즘도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호텔, 부동산, 술집, 식당들로 흘러내린다.

2013년 8월10일 버마 정부와 버마학생민주전선의 휴전협정 서명식.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로드맵 제2 단계인 정치회담은 교착상태다. 앞쪽이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 맞은편이 휴전협정을 이끈 아웅민 대통령실 장관. 정문태

버마 민주세력의 정치적 국경

스파이 도시 치엥마이의 악명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2002년 미국 중앙정보국이 아부 주바이다를 비롯한 알카에다 용의자 불법 고문으로 큰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른바 ‘블랙 사이트’(미국 상원정보선정위원회는 ‘사이트 그린’으로 기록)로 알려진 그 비밀 고문실이 바로 치엥마이였다. 지난 3월 중앙정보국장 임명을 놓고 테러 용의자 고문 경력으로 난리쳤던 지나 해스펠이 그즈음 치엥마이 블랙 사이트의 총책이었다.

2010년 버마 총선이 다가오던 10월 무렵을 보자. 까렌민족해방군을 비롯한 소수민족 무장조직 사령관들이 워싱턴을 들락거리더니 치엥마이에 비밀 사무실을 열었다. 머잖아 중앙정보국 요원이 그 사무실을 거점 삼아 소수민족해방군들한테 통신을 가르쳤고 까렌민족해방군은 첩보용 카메라와 비디오 같은 특수 장비를 전선에 깔았다. 소수민족해방군 진영에서는 일제히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돌렸다. 총선 이틀 전인 11월5일에는 소수민족해방군들이 버마연방의회(UBP)라는 정치연합체와 비상연방동맹회의(CEFU)라는 군사동맹체를 결성했다. 미국이 대 버마 전진기지로 여전히 치엥마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치엥마이는 1980년대 말로 접어들어 국경 혁명도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1948년 버마 독립 때부터 자치와 독립을 외쳐왔던 소수민족들의 무장투쟁이 거세게 달아오르면서 버마-타이 국경 전역에 전선이 펼쳐졌다. 1988년 민주항쟁 뒤 국경으로 빠져나온 학생들이 버마학생민주전선 이름을 걸고 무장투쟁에 뛰어든 것도 그즈음이었다.

버마-타이 국경 지대에 해방구를 튼 소수민족 무장조직들한테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타이뿐이었고, 그 길은 북부 중심지이자 전통적인 국제정치판이었던 치엥마이로 뻗었다. 역사적으로 늘 버마와 부딪쳐온 타이 정부는 이 소수민족 무장조직들을 국경 완충용 삼아 소리 없이 치엥마이를 열어주었다. 그로부터 버마 소수민족해방 조직과 민주혁명 단체들은 저마다 치엥마이에 비밀 혁명 거점을 차렸다. 치엥마이가 버마의 비선 정치무대로 값어치를 드러낸 건 2011년부터 벌어진 휴전협상에서다. 그즈음 버마 정부 협상대표였던 아웅민 대통령실 장관과 각 소수민족 대표들은 하루가 멀다 않고 비밀스레 치엥마이를 들락거렸다. 물론 타이 정부는 그 뒤를 받쳤다. 그렇게 해서 버마 소수민족해방·민주혁명 세력들한테는 정치적 국경이 치엥마이로 내려왔다.

냉전 내내 인도차이나반도의
비밀 반공 방파제 노릇
미·영·프·일·소·중 정보원들 암약
아편왕들의 비밀금고 역할도
미 CIA의 대 버마 전진기지

5월26일 도심 호텔에 모인
버마 전국휴전협정 조정위원들
소수민족 군대 불가 등 군부 전제
대응책 놓고 이틀간 비공개회의
버마 평화 안착 당분간 안개 속

5월27일 치엥마이 쿤푸캄호텔, 전국휴전협정 그룹이 제20차 ‘평화진행조정팀(PPST) 회의’란 이름을 걸고 이틀 째 마주 앉았다. 버마 군부가 내건 전제 조건 탓에 1년째 정치회담이 제자리걸음하면서 그 대응책을 마련하는 자리다. 이 회의에서 나온 결론을 들고 대표단이 랭군으로 가서 군부와 담판을 짓겠다는 뜻이다. 하루 전 실무회의와 달리 이날은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한 10개 무장조직 지도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군부와 협상할 이 회의 내용을 미리 말할 순 없지만, 정치회담의 전제 조건은 절대 못 받아들인다. 그렇더라도 이 협상을 절대 우리 쪽에서 먼저 깨지는 않는다.” 평화진행조정팀 회의를 이끄는 카렌민족연합 의장 무뚜 새 뽀 장군 말이다. 그이는 만나자마자 “인터뷰 없다.”며 손사래부터 친다. 지금껏 인터뷰 안 받기로 악명 떨친 그이 입에서 이 몇 토막을 뽑아낸 것만도 기적이다. “아니. 말 못할 것도 없어. 군부가 ‘연방 탈퇴 불가’ ‘개별 연방군(소수민족 군대) 불가’ ‘민족회담 협의 불가’를 정치회담 전제 조건으로 내건 거야. 전제 조건 없다는 평화회담 대원칙을 그쪽이 깬 거지. 해서 돌파구를 찾자는 게 이 회의야.” 샨주복구회의 의장인 욧석 장군이 의제를 귀띔해주었다.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탄케가 거들고 나선다.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이런 전제 조건을 내건 건 군부가 정치회담 할 뜻이 없다는 거지.” “겉치레일 뿐이지만 아웅산수찌 정부 입장은?” “아웅산수찌 쪽은 평화회담 의지만 내세웠지 능력도 전략도 계획도 없어. 군부에 끌려 다니며 꿈만 꾸는 거지.” “이 놈의 회담 영원히 안 끝날 것 같은데?” “죽을 때까지 회의만 하다 말거야.” 탄케는 2013년 휴전협정을 맺은 뒤, 5년째 한 발짝도 못 나간 정치회담에 지쳤다고 털어놓는다.

순탄치 않을 버마 앞날

사람들 낯빛을 보면 회의 내용이 보인다. 소수민족 대표들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저마다 고단한 몸짓을 보이며 뿔뿔이 흩어진다. 이 회의 결과도 다가온 협상 전망도 모조리 신통찮다는 뜻이다. 대표단과 약속한 대로 이번 비공개 회의 결과를 미리 말할 수는 없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정치회담도 버마의 평화도 보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또렷이 밝힐 수 있다.

아웅산수찌를 내세운 무늬만 민간정부인 버마의 앞날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예감만 남긴 회의였다. 북부 버마에서는 오늘도 정부군이 까친독립군,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 따앙민족해방군(TNLA), 아라깐군(AA)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비록 휴전협정은 맺었지만 우리가 다시 전선으로 되돌아갈지 말지는 군부 의지에 달렸다.” 민족연합연방회의(UNFC) 의장 나이 한 따 어깨가 전에 없이 무거워 보인다. 버마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버마 정부군에 맞서 소수민족의 자치와 해방을 외쳐온 몬민족해방군(MNLA)의 여성 전사들. 정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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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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